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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영화리뷰: 묵시적 스토리, 아바타2편, 물의 길]

백두산백송 2024. 1. 25.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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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영화리뷰: 묵시적 스토리, 아바타2편, 물의 길]

<아바타>~, <아바타>~, 소리를 들은 지 꽤 오래되었다. 보고 싶었다.  봐야지~봐야지~하면서 놓쳤다가 겨우 넷플릭스로 봤다. 2022년 캐머런 감독은 2년 뒤 <아바타 3편>을 가지고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올해가 2024년이다.

<제3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아바타 2편> 리뷰를 새해 벽두에 올려 본다. <제3편>이 빨리 나오면 좋겠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2편>을 보다가 도무지 줄거리를 이해할 수 없어 보지 않았던 <1편>을  보고 <2편>을 다시 보았다.

아무리 스펙터클한 영상도 스토리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로 영상 앞에 앉아 있을까. 결국 우리네  삶도 스토리가 역사를 이어가며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가. 스토리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 삶의 원천, 그 생명력은 바로 스토리에 있다.

스토리는 다름 아닌 소통을 의미한다. 영화 <아바타 1,2편>은 AI시대로 치닫는 이 시대에 이 우주를 지탱하는 원천이 스토리, 즉 소통에 있음을 강력히 말해 주고 있다. 1,2편을 관통하는 '인간성 강조', 그래서 나는 감상 리뷰 제목을 '묵시적 스토리, 아바타'로 잡아 보았다.

거대한 영상이 주는 흥분과 전율, 이상한 '판도라의 생명체'가 우리네 이야기로 환치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늘 3차원의 세계를 꿈꾸고 더 나아가 3D나 4D가 주는 영상의 세계를 갈구한다. 그 꿈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 바로 '아바타의 세계다. 하지만 과학이 던져 주는 공상의 세계가 현실로 부딪칠 때는 상대적으로 늘 '인간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 영화는 과학과 인간성의 대결이요, 이를 통해 진정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판도라 행성>이 원시적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최첨단의 우주행성>과 맞대결을 하는 장면을 보고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기고 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끝내 '아바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성의 승리'가 밑판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짙게 드리워진 휴머니즘의 승리, 이것은 아무리 AI시대가 왔고, 사이보그가 인간을 지배하더라도 '최후의 승자'는 결국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2편, 물의 세계>, 다양한 해양의 신비는 늘 우리가 꿈꾼 미지의 세계다. '판도라의 섬'도 '나비족의 하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가족애를 통한 인간성 회복'과 '공동체적 삶의 의식'이다. 이 영화는 세 시간 넘게 이것을 '묵시적 스토리'로 울부짖고 있다. 누가 주인공이고 감독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꿈꾸는 우주, 세기의 종말. '아바타적 인간'을, 다시 말해 '기계적 인간'을 끊임없이 양산한다면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바타 2편>, 첫 시작과 함께 거대한 컨테이너가 날아가버림은 무엇을 암시할까. 더 이상 가면 인간도 아바타도 우주도 끝이다.

영화를 보며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단어가 오월동주(吳越同舟)였다.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최첨단의 아바타를 양산하는 '행성과 판도라의 섬', 그리고 바다는 서로 '오월동주'가 되어야 한다. 함께 가야 할 운명공동체여야 한다. 내가 당했다고 끝까지 복수의  아바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극과 극은 결국 통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공존의 세계, 합일의 세계가 신우주의 세계로 자리 잡아가야 한다.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복수의 아바타가 되어 끝내 파국을 맞이하는 것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결국 아바타의 핵심은 '묵시적 스토리'로 소통에 있다. '판도라의 섬', '신비한 나무'를 중심으로 그들은 서로 소통하며 그들만의 세계와 생명력을 유지해 간다. 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바다도, 나비족이 지배하는 하늘도, 인간도, 아바타도 소통해야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이크 설리'와 그의 아내도 결국 말미잘의 촉수 같은 더듬이를 통해 소통으로써 한 몸이 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늘 "만물의 어머니’ 또는 ‘위대한 어머니’라고 불리는 "에이와 Eywa"를 외치고 그들의 족장인 "토루코 막토"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며 기사회생한다. 이렇듯 존재의 시발이 '묵시적  스토리'요, '그 소통이 바로 역사'요, 그들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아바타, 새로운 우주과학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인간성 회복',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역사', 그것은 다름 아닌 시공을 초월한 '아바타의 묵시적 스토리임'을 영화는 끝까지 말해 주고 있다.

아바타는 이미 <제3편>을 예고하고 있다. 복수의 아바타인 '마일스 대령'이 살아 있고, 아들 '스파이더'가 '제이크 설리'와의 중간에서 중재자적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다른 행성으로의 탈출, 카오스의 세계. 그 혼돈의 블랙홀에서 아바타의 세계, 아니 묵시적 스토리, 다시 말해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제4>, <5편>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다. 세 시간 이상을 내리 달려온 영상도 나와 함께 파리하게  퍼져버렸다.

<제1,2편>, "아바타", '묵시적 어록'인 양 나에게는 '묵시적 스토리'로 다가왔다.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시대, 소통 부재의 시대, 소통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20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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