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필: 대니산 끝자락, 도동서원]
도동서원 가는 길은 언제나 얌전한 꽃길이다. 길가 코스모스도 고개를 숙이고 달맞이꽃도 얼굴을 가린다. 길이 얌전하니 길손의 마음도 저절로 겸손해진다. 낙동강을 끼고 현풍 살짝 돌아가면 구지면 도동리 대니산 서북쪽 끝자락에 똬리를 튼 도동서원이 있다. 하늘 높은 가을, 사백 년 수령 넘은 노거수, 황금빛 은행나무가 길손을 반긴다. 윤리와 도덕, 성리학의 결정체인 우리의 서원에는 도동서원을 비롯 소수, 남계, 필암, 옥산, 병산, 돈암, 무성서원 등 9개 대표 서원이 있고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낙동강을 따라 서원을 향하다 보니 자연스레 박 목월의 《나그네》란 시가 목젖을 울린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도 한 줄 시로 목월을 흉내 내 본다.
도동터널 건너서
무 배추밭 길을
고향 가듯
때때로 찾아가는 나그네
길은 도동길
대니산 끝자락
커피 향 솔솔
기우는 해거름
고향 가듯
때때로 찾아가는 나그네
나는 무료하거나 머리가 텅 비고 가슴이 답답할 때 강물 따라 도동서원을 찾는다. 흥겹다. 목월은 가소롭다 웃겠지만 목월이 지훈과 주고받은 화답 시를 생각하면, 비롯 모사지만 내 마음 흥겨움을 어이하랴. 서울에 있는 조지훈이 당시 건천에 살고 있는 목월을 찾아 '술 익는 마을'을 못내 잊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목월에게 준 시가 지훈의 '완화삼'이요, 이에 화답한 노래가 목월의 '나그네'란 것을 낙동강도 알고 나도 안다. 그대로 흉내 낸 노래가 강을 울리고 강물이 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힐링이 따로 없다.
어느 서원이든 서원에는 위패를 모신 주향이 있다. 도동서원의 주향은 김굉필이요 그를 기린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란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김굉필은 1498년 무오사화 때 붕당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평안도로 유배되었고, 1506년 갑자사화 때 순천에서 사약을 받았던 나이가 향년 51세였다. 세월 흘러 1506년 중종반정 뒤 성리학의 기반조성과 인재양성에 끼친 업적으로 재평가된 인물이다. 1610년 광해군 2년에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 5현 중 으뜸인 수현(首賢)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다람재 고갯길 정상에 올라서니 김굉필의 시 노방송(路傍松)이 반긴다. 노방송(路傍松)은 설로장송(雪露長松)으로 도동서원 사당 안에 벽화로도 그려져 있다. 며칠 째 내린 비로 강물 수위가 높아 보인다. 오고 가는 길손의 얼굴들이 사뭇 진지하다.
一老蒼髥任路塵(일노창염임노진)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길가에 서 있어
勞勞迎送往來賓(노노영송왕래빈)
괴로이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
歲寒與汝同心事(세한여여동심사)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經過人中見幾人(경과인중견기인)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는가
조용히 내려앉는 해거름, 대니산 다람재 정상, 돌판에 새겨진 노방송(路傍松)을 읊조리는 사이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아는지 한 마리 꿩이 얄밉게 추임새를 넣고 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다람재를 내려오는 길목, 도동리 138 커피숍, 커피 향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동서원이 '대니산 끝자락 道, 東'에서 꽃피고 있었다.(2023.10.1)
※참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동서원 이야기, 道, 東에서 꽃피다(달성군 관광과/밝은 사람들 제작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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