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정월 대보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백두산백송 2024. 2. 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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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다음카페

현상과 본질, 그 경계선에서 많이도 고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글들은 본질을 벗어난 현실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은 본질의 언저리를 맴돌며 그저 드러난 현상에 울고 웃는 찰나적 감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수필은 근원적인 문제를 바탕으로 철저히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지향할 때 독자는 공감을 한다. 언젠가는 나도 항구성과 보편성을 지닌 명작 하나를 남기고 싶다.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수필,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스스로의 사유가 보편적 진리를 바탕으로 공감을 획득할 수는 없을까.

수필집 속에 있는 부끄러운 글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개작을 하거나 퇴고하며 스스로의 글을 다시 다지고 싶다. 때론 묵은 글들이 주는 진부함과 잡설이 부끄럽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나는 이를 내 수필을 위한 몸부림으로 여기고 싶다.

아래 글은 그 옛날 큰댁을 중심으로 정월 대보름의 풍속 일부를 반추해 본 작품이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내 기억은 어제처럼 또렷하다. 모든 것이 그리움 되어 한 편의 영상으로 흘러간다. 그리움은 늘 양면성을 띄며 아픔 혹은 사랑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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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정월 대보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기도마저 시들해지는 밤이다. 그래도 기도는 해야 한다. 설 지나 정월 대보름, 정화수 한 그릇, 어머니의 기도 속 그리움과 추억이 설을 앞두고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바나이다~. 비나이다~."

그날도 보름달은 휘영청 밝았다. 사랑방은 화롯불이 돋아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달빛을 헤집고 날아든 새들이 처마 밑을 파고들었다. 천자문을 낭독하며 담뱃대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할아버지의 손목은 새소리 장단에 흥겨워하고 있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 황.....”.

택호가 대궐댁인 큰집 안방에서는 한바탕 윷놀이가 벌어졌다. 아지매, 형수, 형님이라 불리는 한 집안 대소 식구들이 다 모였다. 흥성하니 윷판은 흥을 더해가고 아이들은 보름달을 깡통에 담아 마구잡이로 돌렸다. 크고 작은 보름달 속에는 계수나무와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달 밝은 정월 대보름, 이날을 한자어로 상원(上元)이라 한다. 어머니는 나물을 마련하고 오곡밥을 지어 보름달을 향해 치성을 드렸다. 이것을 우린 세시풍속의 하나인 달맞이요, 절식(節食)이라 불렀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습속과 행태는 다를지라도 얼개는 비슷해 보인다. 달을 보고 한 해의 운수를 점친다거나 나이 많은 농부는 달빛을 두고 가뭄과 홍수를 가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의 절식에는 대체로 오곡밥과 김이나 나물잎에 밥을 싸서 먹는 복쌈이 있으며 귀밝이술은 빼놓을 수 없었다.

보름달을 볼 때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이제는 전설처럼 흘러간다. 세월도 가고 사람도 가고 모든 것이 다 변했다. 명절제사는 물론이고 귀밝이 술은 아예 고어로 단어 자체가 없어질 판이다. 성균관에서 제사 지내는 방식과 간편한 차례상 표준화를 제시하면서 관습과 관례에 따른 세시풍속의 명맥을 잇고자 몸부림치고 있지만 이제는 먼 달나라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망향지정과 수구초심이란 말이 입가를 맴도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부쩍 익어버린 얼굴이 쭈그러진 보름달이다. 세월 속에 그리운 것들, 쥐불놀이 하던 큰집 마당, 넓은 하늘 보름달이 생각나고,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같이 배웠던 사촌 누이와 벌거벗었던 동생들도 보고 싶다. 추억의 언덕배기, 정지용의 '향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큰집 대궐댁을 넘나들던 밝은 달아~. 그 달이 그 달이련만 이내 가슴속 박힌 달은 추억의 보름달, 그 옛날 그 달이 저만치 멀어져 가며 씩 지나간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 황.....”.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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