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허준도 육각형인간이 아닐는지 제4화>]

백두산백송 2024. 2. 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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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허준도 육각형인간이 아닐는지 제4화>]

허준도 김난도가 말하는 '육각형인간'이 아닐는지. 비교하기가 언어도단이요, 견강부회 같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독서가 주는 쾌락이라면 쾌락이다. 역시 '내독(讀) 내석(釋)'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2024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서의 '육각형인간(A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 완벽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등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육각형인간'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강박적인 완벽함의 반향으로 작용한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목표라면, 포기를 즐기는 놀이이자 타인을 줄 세우기 위한 잣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육각형인간 트렌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활력이자 절망이면서 하나의 놀이다.'(출처:트렌드코리아 2024. 김난도)

허준의 나이 스물아홉, 웬만치 이론을 쌓은 지 6년 세월.  하지만 유의태는 허준에게 아직까지 임상의 경험을 허락지 않고 있다. 의원이 되는 길은 아직 멀어 보이고 아내 다희와 어머니의 생활고는 날이 갈수록 힘겹다. 이리저리 부산포 등이 허준을 유의태의 집에서 벗어나게 유인하나 허준은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의술은 증험(證驗)을 첫째로 한다고 아들 도지에게 다짐하던 유의태와 한밤중 남의 묘지를 파헤치는 새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두 눈의 사나이 안광익을 떠올리는 허준.

허준에게 생애 처음으로 병자가 찾아든다. 겨드랑이서 악취가 돋는 액기(液氣) 병으로 고민하다 정혼을 앞두고 목을 매어버린 처녀의 알몸을 더듬고 있는 허준. 기어이 처녀를 살려낸 허준은 액기병을 치유하는 비방을 처녀에게 일러 주며 삶의 용기를 북돋운다. 난생처음 죽음 직전의 환자를 살려 낸 허준. 아내도 어머니도 감격의 눈물을 삼킨다.

지금 한방의 비책을 소개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으리요만 액기병을 다스리는 방편이 신기하여 있는 그대로 소개해 본다. 비롯 한의사나 약사나 주치의가 웃을 일일지 모르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단계심법(丹溪心法)과 만병회춘(萬病回春) 속에 있는 두 처방을 일러 주었다. 새벽 오경에 돼지고기를 겨드랑이 털을 덮을 만큼 썰어 겨드랑이 밑에 끼고 있다가 날이 새면 감초를 끓여 마시기를 매일 반복하는 일과 또 한 방편으로는 논고동(大田螺)을 잡아다가 살아 있는 채로 깨끗한 그릇에 서너 마리씩 기르면서 그 물속에 파두(巴豆:버들옷과에 딸린 상록관목) 한 톨을 넣어 여름철에는 하룻밤을 재우고 겨울에는 대엿새 밤을 재우면 전체가 물로 변하는데 그 물을 겨드랑이에 바르면 능히 근절되리라는 비책을 일러준 허준. 이 또한 홀로 공부하며 깨우친 것이라 대단하기 이를 바 없다.'

하지만 일은 꼬이고 만다. 제자의 단독적인 의료행위가 스승을 거역하고 능멸하는 행위인 걸 뒤늦게 깨달을 허준. 유의태의 집에서 쫓겨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이야기는 반전되어 독자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다.  유의태는 허준을 신뢰하게 되고 소갈병(당뇨병)의 증상을 짚어 주며 각기병과의 병세의 차이를 조목조목 허준과 묻고 답한다.

"그만하면 네가 제법 그동안 노심초사한 흔적이 보인다. 내 너에게 하나만 더 물으리라."

허준의 발치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고 있다.

스승이 될 유의태와 허준과의 대화, 자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유의태는 허준에게 동정적이면서도 의술과 관계되는 것에는 냉정하기 그지없다. 허준을 향한 유의태의 화룡점정을 향한 눈매는 무섭지만 허준은 이미 그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

'완벽한 최고의 자아를 선망하는 육각형 인간들은 1) 아무나 육각형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노력으로는 이루기 힘든 기준을 내세우는 '담쌓기',2) 육각형인간임을 증명하고자 모든 가치를 돈과 숫자로 평가하는 '수치화하기'. 3) 육각형 인간이 되기 어렵다는 불편한 현실을 게임처럼 희화화해 가볍게 웃어넘기는 '육각형 놀이'에 몰두한다.

요즘 젊은 세대가 즐기는 콘텐츠를 살펴보면 '고진감래의 서사.' '개천에서 용 나는 흙수저 신화'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냥 날 때부터 완벽한 주인공이 바로 등장하고, 데뷔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갖춘 '완성형 아이돌'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을 뽐내는 전 세계의 동년배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도 그처럼 완벽한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유형무형의 압박이 강해진 것이다.

육각형인간 트렌드는 완벽을 지향하는 사회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젊은이들의 활력이자 절망이면서 하나의 놀이다.'

왼벽추구형의 인간, 허준, 그는 약초 이름 하나도 어설피 듣지 않는다. 스승인 유의태의 시험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과 현실에의 집착과 의지, 그리고 미래지향적이다. 한의서 동의보감이 어디 그냥 나왔겠는가. 김난도가 말하는 육각형인간이란 "완벽한 인간"을 의미하고 육각의 이미지로 여러 대상의 특성을 비교분석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이미지를 '헥사곤 그래프라'라고 한다.

고진감래, 개천에서 용이 그냥 나는 것이 아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미 고착화된 계층 속에서 육각형에 대해 꿈을 접는다. 그들은 다만 육각형을 지향하고 이내 육각형놀이에 몰두하면서도 현실에서 주어지는 패배 속 울분의 카타르시스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허준은 아니다. 다만 소비형 트렌드의 여러 측면을 접어 둔다면, 허준은 적어도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육각형인간이라 볼 수 있겠다.(20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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