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山사람 7년, 제2화>]
-N포세대들, 그래도 허준을 닮으면 좋겠다.-
약재의 출납과 간수를 맡게 된 허준. 이미 앞뒤 일을 꿰뚫어 보는 허준은 묵묵히 약초 캐는 일에 전념한다. AI에게 이런 허준에 대해 그 인간성을 묻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로 재직, KBS1TV <명견만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렌드 연구자. 그리고 이제 겨우 약초에 눈을 떠가는 허준. 내가 보기에는 둘의 공통점이란 '시대를 초월한 선지적 식견'이요, 차이점은 '통시적 괴리' 하나뿐이다.
주변 인물들에게 숱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아내 다희에게 한마디 내색도 하지 않는 허준. 서로를 다독거리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두 사람 부부의 대화를 생각하면, 아니 김난도가 말하는 2024년 소비트렌드 키워드의 하나인 '요즘남편 없던아빠'는, "도대체 뭐지~"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2024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1) 분초사회, 2) 호모 프롬프트, 3) 육각형 인간, 4) 버라이어티 가격전략, 5) 도파밍, 6) 요즘남편 없던아빠, 7) 스핀오프 프로젝트, 8) 디토소비, 9)리퀴드폴리탄, 10) 돌봄 경제'다.
그래, 김난도가 말하는,
-Not like Old Daddies, Millennial Hubbis:요즘남편 없던아빠-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이 된 오늘날, 결혼 후 남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전에 없이 달라졌다. 가사 노동과 육아, 가족 관계의 균형점이 이동하고 있다. 권위적 가장에서 평등한 동반자로 역할이 바뀌어가는 요즘남편,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6시 신데렐라'를 자처하는 '없던아빠들'이 가정과 기업, 나아가 소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를 두고 격세지감이라고 해아하나. 허준과 다희의 대화는 이어진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원을 지망하는 사람들이온데 새 사람이라 하여 턱없이 질시할 리 없다 여깁니다만......"
"그래, 당신은 이 험한 세상을 다 알 것 없어. 당신은 당신이 믿듯이 세상 모든 사람 다 심성이 고운 사람이라 여기고 살면 되오. 온갖 추악한 세상의 바람일랑 내가 막아나갈 것인즉."
대화자체가 낡은 축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지만 말끝에 흘러내리는 인간미란 어디 비할 바 있으리오. 백년가약의 천생연분, 허준과 다희.
김난도는 다시 한번 말한다. "기성세대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던 육아 마인드를 갖춘 '없던아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적극적인 자세로 가사를 분담하고, 본거와 처가를 잘 챙겨 패밀리지(패밀리+마일리지) 점수를 쌓아놓아야 원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이를 낳게 되면 아빠로서의 역할 역시 더욱 늘어난다. 양육서를 함께 공유하고 유아용품을 직접 고르며,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시에 바로 퇴근하는 '6시 신데렐라'를 자처한다."
끔찍한 변화다. 허준도 다희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부관계다. 17세기 고전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방정식이 21세기 우리 젊은 세대들의 결혼 전, 후 사고방식과 태도다.
허준, 그래도 갈길은 가야 한다. 가장으로서 어머니 손씨와 아내 다희를 책임져야 한다. 수백 가지 약재의 생김새를 외우며 진땀을 흘리는 허준. 이 허준이 아직까지도 내 눈에는 순정의 남편이요, 어미를 모시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분상승의 욕구는 똑같다. 신분상승은 고사하고 생존을 위한 투쟁, 오늘날 젊은이들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포기가 곧 생존방식의 하나가 되어 버린 현실.
속칭 N포세대, 'N포세대(N抛世代)는 N가지를 포기한 사람들의 세대를 말하는 신조어이다. 처음 삼포세대로 시작되어 "N가지를 포기한 세대"로 확장되었다. 삼포세대(三抛世代)는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하며, 오포세대(五抛世代)는 집과 경력을 포함하여 5가지를 포기한 것을 말한다. 칠포세대(七抛世代)는 여기에 희망과 취미와 인간관계까지 7가지를 포기한 것이고 구포세대(九抛世代)는 신체적 건강과 외모를 포함해 9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다.' <출처:위키백과>
현실이 이렇고 보면 김난도가 말하는 '요즘남편 없던아빠'는 역설적이게도 2024년 소비트렌드를 장식하고 있는 선택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이들 또한 N포세대의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황금휘장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가장으로서 어깨띠 하나 걸칠 수 없는 이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N포세대들은 어쩌면 허준을 닮아도 많이들 닮았다. 이들 또한 천비소생은 아닐지라도 극단의 편차에서 주어지는 금수저와 흙수저란 운명을 헤쳐가야만 한다.
오늘도 구석진 원룸에서 신분상승을 위해 투쟁 하고 있는 일군의 N포세대들의 모습 뒤로 중국식 약초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며 숱한 고초를 온몸 온정신으로 버티어 내고 있는 허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아직은 겨울바람이 차갑지만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대길(立春大吉)은 반드시 온다.
오늘이 2024년 2월 4일, 절기로 입춘이다.
'허준'도 '요즘남편 없던아빠'도 살아야만 한다.
"아이고~ 내 아들, '허준'."
"아이고~금쪽같은 내 새끼, '없던아빠'."
고시촌 한구석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새봄맞이 공무원 시험일을 재촉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줄줄 약초 이름을 외워가는 허준의 입에서 N포세대들의 꿈이 다시금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N포세대들, 그래도 허준을 닮으면 좋겠다.(20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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