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山사람 7년 제1화>]

백두산백송 2024. 1. 3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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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山사람 7년 아직 갈길은 멀어보인다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山사람 7년 제1화>]

-허준도 나도 기죽지 말자-

《트렌드코리아 2024, 청룡을 타고 비상하는 2024를 기원하며!》 (김난도외 10명 공저, 미래의 창 출판/2024.1.10. 초판 29쇄 발행)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아니 벅차다. 용어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면서도 이해가 될 듯 말 듯 난해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한다. 마음이 착잡하다는 것은 1990년 초판 발행의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 푹 빠져 있는데 난데없이 딸애가 툭 던지고 간 신판 도서, 《트렌드코리아 2024》가 내 머리를 들쑤신다는 말이다.  책도 사람도 세윌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기가 죽는가 보다. 누렇게 변색된 《동의보감》 표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DRAGON EYES(용의 눈)란 서문(序文)이 2024년을 팍 치고 나오는데 소설 속 허준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재미있다. 달구지와 최신형 세단에 비견할 일이지만 나름의 정체성이란 적어도 내 눈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인다.

이은성과 김난도, 두 작가가 가는 길이 그래도  하나는 개연성 짙은 소설이요, 또 하나는 첨담의 지성이 내뿜는 숨 가쁜 "트렌드"이기에 극과 극을 통한 엄밀한 속삭임을 나름 능력껏 즐기면 될 일이다. 허준도 나도 기죽지 말자.

산(山) 사람 7년의 길에 접어 둔 허준. 초라한 행색, 약초망태에 호미 하나 들고 아내가 곱게 입혀 준 솜누비옷을 입고 지리산을 향한다.  동행은 약초꾼 경력 2년 차 꺽새다.

꺽새는 그동안 귀동냥한 지식을 자랑삼아 얘기한다. 그래도 듣고 보면 정말이지 약이 될만한 이야기요, 허준에게는 약초에 대한 개인과외나 다름없다.

"도라지는 늦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의 기간에 캐내어 말린 후 먹으면 가래를 삭이는 데 좋고, 여러 해 살이 풀인 호장은 오줌싸개와 여자들의 월경 불순에 쓰이는 특효약이란다." 얼씨구 신이 난 꺽새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말을 이어간다. "으름덩굴은  늦겨울과 초봄 건을 써야 약효가 있는데 안질에 쓴다는 것과 속명이 만병초인 석남채는 1년 내내 잎사귀를 따 모아 벌꿀을 넣고 달인 것을 여자들에게 사흘만 먹이면 나흘째 저녁부터는 여자가 시끄럽도록 방사를 졸라대는 최음((催淫)의 묘약이라며 연신 히죽히죽 웃는다."

지리산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두 사람, 허준도 꺾새도 답답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생업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문제는 분초를 다투는 이  시기에 내가 문제다. 지금 어디 망태기 속 도라지를 이야기하고 최음에 좋다는 석남채를 이야기할 여유가 있기라도 할까.

"챗GPT, 2024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를 알려줘."
1) 지속 가능한 소비, 2) 디지털 경험 강화, 3) 건강과 웰빙 관심 증대, 4) 맞춤형 제품과 개인화, 5) 로컬 및 지역적인 경험 강조, 6) 포스트 펜데믹 트렌더 7) 소셜미디어 쇼핑 확대, 8) 로봇 및 자동화 기술 도입

챗GPT가 뽑은 8개 키워드다. 트렌드서의 저자로서 AI가 도출해 낸 키워드를 본 첫 개인적 소감은 "안도"였다. 인공지능이 채울 수 없는 창의의 영역이 아직은 2%,  아니 20% 이상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저자 김난도의 말이다.

다행이다. 인간적인 아니 휴머니티를 지닌 사람인 허준도 나도 꺾새도 아직은 살아갈 여지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 AI가 기계적인 생산성은 월등히 높여줄 수 있겠지만,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대 수준을 맞추려면 인간의 역할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어쩌면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내놓은 비슷비슷한 결과물 속에서 어떤 "휴먼터치"가 마지막에 더해졌느냐에 따라서 그 수준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야.

한마디로 화룡정점정이 필요하다. 이 말은 어떤 작업에서든 가장 다른 가장 결정적인 일을 마무리 함으로써 그 작업을 끝낸다는 의미다. 아무리 잘 그린 용이라도 눈동자가 없으면 아직 제대로 된 용이 아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근사치까지 작업을 완성해 놓는다고 해도, 사람이 마무리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준을 갖추기 어렵다. 이런 취지에서 용띠 해에 어울리는 이번 책의 부제를 화룡점정의 의미를 담은 'DRAGON EYES'로 정했다."

도라지 대여섯 뿌리를 캐서 마을로 돌아온 허준의 발목은 뱀에나 물린 듯 부어올라 있다. 이런 허준에게 자신이 캔 거짓 약초를 허준의 망태기에 가득 담아준 꺽새. 허준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다. 동료들의 허준을 향한 질투의 한 모습이다. 야박한 꺽새지만 유의태는 허준이 정성으로 캔 도라지 한 두 뿌리를 보며 약초꾼들 앞에서 허준을 치켜세운다. 유의태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받은 허준. 유의태는 한걸음 더 나가 허준에게 약재창고를 맡게 한다.

이들 앞에서 유의태는 약초꾼의 정성과 덕목을 이야기하며 아들 도지를 향해 의원 시험대비를 위해 서른세 가지 물에 대해 훈육을 한다.

물에도 서른세 가지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시는 어려운 것. 아들 도지의 국시합격, 그 화룡점정을 향한 길은 아직도 멀고 먼 가운데 허준의 가슴은 또 다른 화룡점정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트렌드코리아 2024》와 함께 읽는 《소설 동의보감》 속 유의태의 존재가 허준의 일생에 화룡점정으로 다가오고 있다. (202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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