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로랭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리뷰, 절대 고독, 그러나 답은 없다]
-절대 고독, 그러나 답은 없다-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온다.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새들은 죽는다.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져 죽는 새들. 새들은 왜 조분석(鳥糞石)을 떠나 이곳에 날아와 죽는 것일까. 나는 이 소설을 몇 번째 읽고 있다. 재미가 있어 읽는다기보다 새들이 페루 해변에 와서 죽는 의미와 주인공과의 내밀한 밀어를 듣고 싶어서다. 새들의 죽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 그들의 운명적 결합은 완전합일체다. 새들도 죽고 그도 죽는다. 새들과 주인공은 그들 영혼의 깊이만큼 죽음을 맞이한다.
강원도 소설가 김도연이 추천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 김남주 옮김. 인터넷 서핑을 하다 단숨에 구매한 책이다. 구입한 지 두어 달 묵혔던 책이라 책을 보기가 민망하여 서둘러 읽고 또 읽었다.
삶이란 것이 "조금은 시적이고 몽환적"일 때 삶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씩이나 행간의 의미를 짚어봐도 주인공의 삶은 전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흔일곱의 자크 레니에. 그는 스페인, 프랑스,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페루 해변까지 흘러들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새들이다. 제목을 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로 했을까. 새들은 왜 굳이 이 해변으로 날아와 죽는 것일까. 제목만 보면 새들의 죽음이 귀소본능적 죽음 같지만 이것은 아니다. 새들의 죽음이 "몽환적이고 시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때 이 소설에 대한 외연의 폭이 넓어질까. 작가는 말하고 있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라고.
그렇다면 새들이 선택한 이곳 페루 해변, 이곳을 감히 성지라 말해도 될까. 주인공의 영혼이 사라지고 새들이 날아와 환생을 꿈꾸는 공간, 바다는 결국 영생의 이미지와 궁극적인 위안과 내세의 공간으로 이해해도 될까.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이곳 페루 해변, 결국 주인공도 이 섬에서 종적을 감춘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묵직한 행간의 의미가 단순하면서 답답하다. 역시 새의 죽음이나 주인공의 사라짐을 조금은 '시적이고 몽환적'이라고 생각할 때 바다는 단순 죽음과 고독의 공간이 아닌 영생의 바다로서 거듭난다. 재생과 영생이 내재하는 역설적인 공간으로서의 바다, 나는 이 바다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주인공 레니에, 어느 날 파도에 뛰어드는 한 여자, 우연히 찾아온 이 한 마리 새를 그는 구하게 되고 순식간에 둘만의 사랑이 격정적으로 덮치지만 그녀는 남편을 따라 떠난다. 그가 맞이한 아홉 번째의 고독, 그 고독을 이 여인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고독은 고독으로 끝난다. 결국 재생과 영생이 내재하는 역설적 공간으로 그녀도 갔고 주인공도 사라져 버렸다.
고독은 절대 인위적으로 치유될 수 없는 것. 소설 전편을 꿰뚫는 조금은 몽상적인 사유. 그것은 "자연은 사람을 배신한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이라고."
소설가 김도연은 왜 이 소설에 빠졌고 이 소설을 추천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무 살에 이 소설을 처음 접했고, 짧은 이 소설을 50번 넘게 읽으면서 인생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을 읽는 순간 나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주인공 레니에도 페루에 와서 사라졌다. 나도, 새도, 레니에도, 결국 우리 모두도 지상에서 임무를 다한 어느 날 영생과 내세의 바다 그 한 곳에서 거듭날 것임을......
잠에서 깼다. 고독하다. 철저히 외롭다. 그러나 답은 없다. 숙명적이거나 운명적인 고독은 절대로 인위적으로 깨뜨릴 수 없다. 절대고독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자연뿐이다.(202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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