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山사람 7년 제3화>]
♤허준도 디토소비한다
'디토소비',-<You choose, I"ll Follow: Ditto Consumption> 디토소비, '나도'라는 의미의 'Ditto'가 소비현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는 사람, 콘텐츠, 유통채널의 선택을 따라 하는 디토소비는 구매 의사결정에 따르는 복잡한 과정과 시간을 건너뛰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FOBO(포보는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피하려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즉 실패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손쉬운 방편, 디토소비가 뜬다.-(출처:트렌드코리아 2024. 김난도)
소비전략, 의사와 환자 간에도 소비전략이 있다. 유의태는 말한다. 의원도 여덟 가지 의원이 있다.
유의태는 이 여덟 가지 의원 중에 제일이 심의라고 한다. 심의(心醫)는 병자에 대해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의 의원을 말한다. 그렇다면 디토(DITTO)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심의를 선택하는 소비유형을 보인다. 요즘은 환자도 소비자의 차원에서 선택진료권을 가진다. 의사가 되려면 심의가 되라는 유의태의 말에는 바로 김난도가 말하는 디토소비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유의태가 말하는 여덟 가지 의사의 나머지는 식의(食醫), 약의(藥醫), 혼의(昏醫), 광의(狂醫), 망의(妄醫), 사의(詐醫), 살의(殺醫)가 있다. 이른바 유의태의 팔의론(八醫論)이다. 굳이 풀어서 언급하지 않아도 심의(心醫)를 빼고는 모두 저질의 의원임을 한자의 뜻만 새겨도 알 수 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편찬된 시기가 1610년이다. 21세기의 소비트렌드, 세월 흘러 상전벽해(桑田碧海)지만 유의태의 팔의론(八醫論)을 바탕으로 한 의사선택 진료, 넓게 보면 디토소비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김난도의 디토소비의 세 가지 모습에는 1) 사람 디토 2) 콘텐츠 디토 3) 커머스 디토가 있다. 말이 세 가지 유형이지 실은 사람을 전제로 한 하나의 유형에 불과하다. '사람, 콘텐츠, 커머스', 이는 곧 유의태가 가장 으뜸 의원이라 칭하는 심의(心醫)의 외연(外延)과 내연(內延)을 다 포함하고 있다. 1)'사람 디토'는 나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2)'콘텐츠의 선택'은 누가 하는가? 3)' 커머스 디토'는 대형 유통 채널을 통한 상품 선택은 누가 하는가? 결국 사람이다. 준거집단에 대한 선택이 '사람 디토요, 가장 선호도가 높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것이 '콘텐츠 디토'며 대형 종합몰 등의 대형 유통 채널을 통한 상품 선택이 '커머스 디토'다.
허준과 김난도가 시원스레 입춘 지난 봄날을 거닐고 있다. 아직 허준의 갈 길은 멀다. 유의태는 아들 도지를 국시에 합격시키기 위해 궁에서 내의를 지냈던 막역한 친구 삼적대사(三寂大師)를 집으로 초대하여 시험 준비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허준의 머릿속에는 명동거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몰래 들은 유의태의 팔의론과 지난밤 도지에게 국시에 나올 법한 질문을 퍼부은 삼적대사의 가르침을 상기하기에 여념이 없다. 같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같을 리 없다. 귀동냥으로 의원의 꿈을 키우고 있는 허준의 모습이 처연하다. 언젠가 보았던 명견만리에 출연한 최고의 지성 김난도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의학이란 실제 학문이다. 비록 세상에서 학(學)으로 높이려 들지 않고 한낱 술 (術)이라 부르는 것이되 세상에서 무어라 부르건 말건 의술은 다른 학문처럼 귀로 들어서만 아는 것이 아니요 제 눈으로 보고 제 손으로 익혀서만 쓸 수 있는 증험(證驗)의 학문이다. 하여 의원이고자 하는 공부의 시초는 1천5백92가지 약제의 이름을 외우고 오미(五味:신함고감산/辛鹹苦甘酸)의 맛과 그것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며 희노우사비경공(喜怒憂思悲驚恐) 그 칠정(七情)의 신(神)의 허실(虛實)을 다 알았다 한들 마지막 한 가지를 알지 않고서는 진실로 의원일 수 없다."
유의태가 아들 도지에게 훈육을 하고 있다.
"마지막 한 가지라니요?"
"사랑이다. 긍휼, 즉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
유의태와 아들 도지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허준, 아직 그 경지가 아님에도 그의 온몸에 뜨거운 긴장이 뻗친다. 허준은 이렇게 의원이 되어가고 있다. 아들 도지의 국시(國試)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 유의태, 그렇게 냉담하고 싸늘한 유의태도 아들 앞에서는 영락없는 범부다. 의사 국시, 당시는 이를 의원취재(醫員取才)라 불렀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사랑'을 강조하는 유의태의 '휴먼터치'가 돋보인다.
김난도도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이야기하면서 강조한 것이 바로 '휴먼터치'다. 의사취재의 마지막 한 가지가 '사랑', 즉 '궁휼'이라 말하는 유의태. 역시 국시의 화룡점정도 '휴먼터치'다.
시공을 초월한 유의태와 김난도의 식견과 통찰. 동의보감과 동시에 읽고 있는 2024 트렌드. 시공(時空)의 괴리만 빼고는 내 눈에는 유의태가 김난도요, 김난도가 유의태이다. 유의태가 누구인가. 앞으로 허준의 스승이 될 거목이 아닌가.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라. 아는 바 없지만 얼핏 들은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의 윤리강령이 유의태의 입에서 나오고, AI를 통한 예술의 완성은 '휴먼터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김난도는 말한다.
지금 가야 할 길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미시적 현상을 통한 진단과 치유, 핵심은 바로 인간이요 인간이 지닌 심성이란 점이다. 사람이 있어야 AI가 있고, AI 속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두 줄기 물이 두물머리 되어 머리를 흔들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내가 읽고 내가 해석한 결과치다.
두 책을 펼쳐 들고 엮어보는 이야기가 오독(誤讀)으로 인한 누를 끼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속칭 "내돈 내산"이란 말이 있듯 "내독(讀) 내석(釋)"으로 빗나간 부분은 독자 스스로 책을 통해 바로 잡아 주면 좋겠다. 감상문이나 독후감도 "내독 내석"으로 수필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해 보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독서산책 정도로 가볍게 이해해 주면 좋겠다. 의학서적 한 권 없이 귀동냥으로 의원의 꿈을 키우는 허준과 21세기 첨단의 지성, 'DRAGON EYES'를 가까이 두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이라 여기고 싶다.(20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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