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밥을 먹다가 지금 일본을 강타하고 있는 책을 아느냐고 물었다. 티스토리를 하고 있지만 이런 소식과 관련된 포스팅과 인연이 없었다. 당연히 몰랐다. 정보의 바다에 놀고 있으면서도 엉뚱하게 뒤통수를 맞고 보니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어 10분 내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이미 빌려 놓은 책을 잠시 와서 보고 가면 좋겠다고 친구는 말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확 치미는 호기심에 그대로 인터넷 구매를 해 버렸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시집 제목이다. 명시 명작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서글프다. 명시가 주는 명약이랄까. 한참을 웃고 나니 눈물이 핑 돈다.
'시리즈 누계 90만 부 판매, 페이지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실버 센류 걸작선', 부제는 '센류: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 5-7-5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풍자나 익살이 특색임)다.'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연명 치료
필요 없다 써 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명시 명작에는 꾸밈이 없다. 굳이 연명치료가 아닌 잔병치료는 실버들의 필수코스다. 그래야 오래 산다. 절대 공감이란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기가 찬다. 이것저것 다 검사하고 기다린 시간이 세 시간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큰 병이라 생각했는데 '병명은 노환이란다.' 기가 찬 것이 아니라 표현이 기똥차다. 스스로의 연민과 동정이 그저 웃고 울린다.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
나도 별반 차이가 없다. 며칠 술 마시고 한 달 병원 가는 신세다.
이쯤 읽다 보니 시조시인 문무학이 생각난다.
그의 '인생의 주소'란 시조다.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출처: 뜻밖의 낱말, 문무학 시조집 2023.)
너무 멋있는 시조다. 웃음보다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값싼 연민이 아니다. 잘은 모르지만 미학이란, 아니 순수미학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문무학 시조시인을 좋아한다. 사람이 멋이 있으니 시조도 품위가 있고 멋있다. 품격으로 치자면 1등급이다. 부드럽고도 감치는 맛이 일품이다. 그가 2023년 출판한 '뜻밖에 낱말'이란 시조집을 통해 실은 우리말에 대해서 나도 많이 배우고 있다. 남들은 우리말이 쉽다고 하는데 알면 알수록 어렵고도 재미있다. '국어사랑, 나라 사랑'이 맞다. 그 선봉에 문무학 시조시인이 있다.
시조집 책머리 글인 <시인의 말>을 옮겨본다.
'열 번째 시조집이다. 문단에 나와 서성인 지 어언 40년이 지났다. 시집 권수는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 할 수 있을 만큼 되지만, 제대로 된 작품은 그에 미치지 못해서 착잡한 심정이다. 그런 심정을 달래느라 나름 정성을 들이고 집중해서 바라보는 한글 관련 소재로는 《낱말》,《 홑》,《가나다라마바사》에 이은 네 번째 시조집이 된다.
40여 년 시조란 안경을 끼고 세상을 읽으며, 독보(讀步)해야 독보적(獨步的) 일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앞으로 쉬워서 친해지고, 재미있어 웃음 나고, 의미 있어 지성이 되는 시조를 짓고 싶다. 그리고 "책으로 노는 사람들"과 함께 책 읽어 나를 세우는 독립(讀立) 운동을 하면서 화려하진 않아도 흠 없는 발자국을 찍으며 천천히 나의 길을 걸을 것이다.' (출처:뜻밖의 낱말, 문무학 시조집 2023.)
이쯤 되면 애국 시조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그런데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독서 인구 통계청에 의하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 1명은 연간 평균 4.2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약 10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늘어나는 서점이 있다. 바로 컨셉과 취향이 확실히 드러나는 '큐레이션 서점이다. 2년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는 서점도 많다고 하지만, 큐레이션 서점을 비롯한 독립서점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의 일상에 독서가 더욱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V다음 넷 썰리)에서 퍼온 글이다.
그래 큐레이션 서점, 아니 독립서점,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출판사라기보다 '사단법인전국유료실버타운, 포푸라샤 편집부'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터넷 서핑을 해 본 결과 서점도 줄어들고 독서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책과 독서를 둘러싼 이런저런 정황으로 좋은 책들이 잠자고 있다. '뜻밖의 낱말', 실은 문무학도 가슴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객관적으로 추상화된 이름이라 문무학, 그의 존함이 서글프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과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다카키 마슈의 정형시'와 '문무학의 시조', 두 명작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서글프다.
딱히 꼬집어 말하고 싶지만 더 이상 말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참는다. '다카키 마슈', 일흔다섯 살 후쿠오카현 회사원인 그는 웃고 있는데 비슷한 나이의 '문무학'은 웃는지 우는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렇다. 실버는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다.' 문무학도 센류 정형시 시집 속 작가들도 대부분 실버들이다. 연민이 살짝 꼬리를 치지만 돌아보면 오십 보 백보다.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나도 심각하다.
*당일치기로
가보고 싶구나
천국에
아직은 가기 싫지만 죽음을 꿈꾸는 하얀 인생이다. 아직 꿈을 꾼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미련은 없다
말해놓고 지진 나자
제일 먼저 줄행랑
툭툭 던진 말들이 내 마음 가슴앓이 그대로다.
유명세를 탄 명작과 잠자고 있는 명작 사이에서 자꾸만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이란 말이 입가를 맴돈다.
문무학은 말했다. "책으로 노는 사람들과 함께 책 읽어 나를 세우는 독립(讀立) 운동을 하면서 화려하진 않아도 흠 없는 발자국을 찍으며 천천히 나의 길을 걸을 것이다."라고.
시조집 '뜻밖의 낱말'이 할 말을 잃은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다. (202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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