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필: "봉황(鳳凰) 새"야 날아라]
봉황이 머물고 간 산사(山寺), 안동 봉정사(鳳亭寺)를 거쳐 영주 소백산 자락 희방사(喜方寺)를 다녀온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어니 땐들 난세 아닌 난세가 없었으랴만 그때도 나는 전설 속 한 마리 봉황새를 꿈꾸고 있었다.
생각보다 굵은 빗줄기가 온몸을 적셨다. 천년을 이어 온 봉정사, 서늘한 목조 건물 사이로 바람마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극락전을 돌아 대웅전을 둘러싼 아름드리 노송(老松)이 힘겹게도 주불을 향해있다. 천년을 이어온 사찰 앞에 무정(無情)인 노송마저 인간으로 하여금 유정(有情)을 낳게 함은 역시 무량무변(無量無邊)의 불력(佛力) 때문이런가.
감내하지 못할 호국의 일념이랄까. 의상대사가 주체할 수 없는 불자(佛者)의 형역(形役)을 종이로 접어 하늘에 날린 종이학이 봉황(鳳凰)되어 자리 잡은 목조(木造) 불사(佛事)의 시원(始原) 봉정사. 대웅전 극락전엔 ‘전설의 봉황’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어는 땐들 평온했으랴만 어지러운 시국(時局)에 대사(大師)의 현현(顯現)을 꿈꾸고 싶은 마음이 절박하다. 꽁꽁 얼어붙은 경제, 물질적 양극화, 일상사를 짐 진 중생들의 몸부림, 그 불심이 빚어낸 상상 속 극락전 전설의 ‘봉황’은 줄곧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날아오르는 듯 본존불을 맴돌고 있을 봉정사 ‘봉황’을 그리며 발길은 소백산 ‘희방폭포’를 향하고 있었다.
하늘 끝에서 떨어지는 폭포, 급히 치오른 폭포수 앞에서 나는 양팔을 펼치며 한참을 서 있었다.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하얀 포말, 천근(天根)을 본 듯 흥분된 내 마음, 어느새 흩날리는 폭포수 사이로 한 마리 ‘봉황’은 날고 있었다. 천 년을 날아오른 봉황, 치고받고 넘나들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폭포수를 가로질러 긴 나래를 펼쳤다. 길게 그러면서도 유유히 비상하는 비구름 속엔 미움도 질투도 사랑도 없었다. 그저 들리는 것은 물소리요 고요는 천 길 낭떠러지를 파고들 뿐이다. 혼돈 속의 법열(法悅)이랄까.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지키며 불심으로 가득하다. 어느새 극락(極樂)의 지존(至尊)이 자리 잡고 비구름 사이를 비껴 나온 폭포수는 끝내 날아오르는 ‘봉황’을 한줄기 무지개로 감쌌다. 잠시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한 가슴, 꿈에 젖은 날개를 접고 보니 천 년을 이어온 ‘봉황’은 이미 ‘폭포’를 돌아 소백산 ‘천문대’를 날고 있다. 역시 꿈은 꿈이었다. 다만 눈앞의 초당(草堂) 같은 ‘희방사’가 잔뜩 비구름을 먹고 있을 뿐이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희방사, 호랑이의 보은과 경주호장 딸의 전설을 배경으로 신라 선덕 여왕 12년에 두운조사가 창건, 그 후 6.25 전란으로 법당과 훈민정음의 원판 및 월인석보 등의 중요 문화재가 소실되어 버린 곳. 대웅전엔 유형문화재 제226호라 적혀 있는 "동종"이 외로운 주불을 지키고 있다.
고요로 융단을 깔아 버린 희방사, 나는 두 손을 모았다. 희방사 동종을 후려치며 봉정사 의상대사의 봉황이 다시금 날아 주기를 빌고비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말이 없다. "봉황새’야 날아라! 불심 가득 천 년을 이어온 ‘봉황새’야 날아라. 소백산 ‘천문대’ 돌아 ‘연화봉’ 가로질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불자(佛者)들의 불심(佛心)으로 다시금 날아라.(20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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