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내 마음 나도 몰라라]

백두산백송 2024. 3. 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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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내 마음 나도 몰라라]

마음이 왜 이리 어지러운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 잠잠하던 마음이 갑자기 요동을 치며 불안에 휩싸인다. 금방 웃었다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이것이 우울이나 조울의 초기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 가까운 앞산을 오르며 나는 몇 번이고 내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금방 가슴에 들어온 내 마음이 초록빛 숲 속을 거닐면서 웃는가 싶더니 우뚝 서 있는 큼직한 바위 앞에서는 이내 얼어 버린다. 참으로 이해 못 할 내 마음이다. 뿐만 아니다. 어떨 때는 내 마음이 큰 바다처럼 넓고도 넓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 없이 남에게 퍼줄 것 다 퍼주고 허탈해하는가 하면 어떨 때는 좀생이도 이런 좀생이가 없을 정도로 소심하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정말 내 마음 나도 몰라라. 내 마음이 내 몸속에 있고, 몸이 내 마음을 감싸고 있는데도 둘은 하나가 되질 못하고 따로따로 노닐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성격 탓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무엇을 용기 있게 척척해 나가는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따져 가며 무엇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성향의 사람도 아닌 것 같다. 하기야 그때그때 성격의 기복을 보이는 이중적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놀랄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좋은 것이 좋다고 대충대충 일을 얼버무리는 그런 형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성격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아들 녀석과 등산복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 복지 카드를 들고 아직 다 쓰지 못한 돈을 채우기 위해 부랴부랴 찾은 탓도 있겠지만 순식간에 이 옷 저 옷을 걸치며 대충 옷을 골라 버리는 나의 행동을 보고 아들은 몹시도 실망하는 눈빛이었다. 어떻게 그 비싼 옷을 그렇게 후다닥 사버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골라 요리조리 옷매무새를 보며 가격을 찬찬히 따지며 자신의 몸에 몇 번이나 걸쳐 보고 옷을 선택하는 자신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섣불리 대충 결정한 내 옷은 돌아서자마자 반품을 하고 말았으니 더 이상 말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마음이 내 속에 있고, 몸이 이를 감싸고 있는 데도 둘은 하나가 되질 못하고 따로따로 놀며 행해온 내 일상의 결과는 이처럼 핀잔을 넘어 낭패를 초래한 경우가 많다. 물건을 고르는 일도 일이지만 평정심을 잃은 초점 없는 내 마음이은 아마도 마음이 몸을 다스리지 못하고 몸이 마음을 감싸지 못한 어눌한 성격, 바로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 마음과 몸의 조화로써 천하에 구름 같은 문하생을 둔 ‘양태’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비록 발목을 잘릴 정도로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지만 그 생사를 초월한 마음 하나 잘 다스려 천하를 이끌만한 스승으로 거듭난 인물이다.

공자는 이를 두고서 ‘사생을 초월한 인물로서 도의 근본을 몸소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귀나 눈으로 외물을 좇지 아니하고 마음을 덕의 화합에 둔 사람으로서 비록 발목은 잘렸지만 그것을 흙에 떨어뜨린 것처럼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공자는 ‘마음을 달리 하는 자의 눈으로 보면 간담(肝膽)도 초월(楚越)이란’ 말을 남겼다. ‘간담초월(肝膽楚越)’, 간과 쓸개처럼 서로 밀접하게 한 몸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등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서로 원수처럼 여기는 초와 월과 같다는 말이다.

일상적인 나태와 불안 속에서 늘 한솥밥을 먹고 있는 내 몸과 마음이 간과 쓸개처럼 서로를 등지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견강부회도 이런 견강부회가 없겠지만 내 마음이 이러하니 생활 속 인간관계는 말해서 무엇하리. 이미 등을 돌린 돌부처 하나가 눈앞을 가린다. 간담초월, 마음 따로 몸 따로 휘청거리는 내 마음 나도 몰라라.(202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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