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필: 팔공산 거북바위, 황홀한 외도]
그날도 나는 바람을 타고 있었다. 아니 바람을 탔다기보다 차라리 외도를 꿈꾸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진초록의 싱그러운 풀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숲 속 능선을 오르내리는 마음은 부풀 대로 부풀어 올랐다.
사랑이라 이름 짓는 여인의 몸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길게 쭉 뻗은 연분홍 철쭉이 오목하니 들어간 보조개로 나를 반겼다. 설렘이랄까. 좁은 암벽 사이 벌어진 하늘구멍에 대한 호기심. 진실한 사랑이 아름답다면 그 사랑을 위한 외도 또한 위대한(?) 것이 아닐까. 팔공산 수태골 지나 거북바위는 이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틈새를 뚫고 잘 자란 노송 하나, 땅이 아닌 바위를 뚫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외도의 위력이란 그래서 아름다움으로 피는 것일까. 하늘로 치솟은 노송 한 그루가 경외롭다.
아직도 보지 못한 것, 나는 거북바위 좁은 구멍을 빨리 보고 싶었다. 주체 못 할 흥분 속에 가슴은 뛰고 마음은 바빴다. 오고 가는 등산객의 앞뒤를 다투며 일탈을 꿈꾸는 사나이. 얼마를 올랐을까. 숨이 막히고, 가슴은 저려오며, 뒷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어디를 보아도 거북바위 틈새를 지나지 않고는 살 길이란 없다. ‘뚫어라.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란 없다.’ 이미 꼭지가 돌아 버린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처박고 온몸을 비틀었다. 살짝 공포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틈새, 이 틈새가 바로 내가 뚫고 지나가야 할 좁은 구멍이다. 후들거리는 뒷다리를 믿음 하나로 비틀거려 보지만 사방은 천 길 낭떠러지요, 산 넘어 산이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거북바위 틈새가 하늘꼭대기 바늘구멍으로 서 있을 줄은 몰랐다.
거북바위 좁은 틈새만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늘 그랬다. 내 마음 하나 열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은 어렵잖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쉽게 오지 않았다.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멀어져만 가는 것들. 끝내 다가갈 수 없는 현실적 아우라는 늘 아픔으로 그늘지기 일쑤였다. 차라리 욕망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이 서글픈 희열로 자리 잡는다고나 할까.
거북바위 좁은 암벽을 지나 하늘 높은 거북바위 등에 올라타야만 한다. 이미 꼭지가 돌아 버린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처박고 온몸을 비틀었다. 이쪽과 저쪽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한 현기증을 몰아오고 있지만 나는 좁은 틈새를 빠져나와야만 한다. 보고 싶다. 좁은 구멍, 하늘꼭대기 바늘구멍으로 곧추서 있는 생명의 구멍을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역시 사랑한다고 아니 사랑하고 싶다고 함부로 탐낼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 물러 설 길은 없다.
그렇다. 우선은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힐 일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긴 호흡과 함께 애무하듯 암벽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순간 좁은 틈새 로 내 몸이 빨려 들어가듯 미끄러지며 하늘로 올랐다. 절정의 순간, 비지땀과 함께 나는 거북바위 정상에 올랐다.
팔공산 거북바위, 설렘으로 기대했던 좁은 암벽, 천 길 나락을 지나친 넋 나간 희열,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이 황홀한 외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진실한 사랑의 저편에 있으면서도 그 진실을 위한 내 사랑의 올가미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천 길 낭떠러지, 좁은 구멍, 황홀한 외도..... 나도 바위 틈새를 뚫고 아름다이 서 있는 노송이 되고 싶다. 황홀한 외도, 좁은 암벽 하늘 꼭대기 바늘구멍은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파고들어야 할 숙명의 길인 줄도 모르겠다. 따뜻한 봄날, 나는 또 팔공산 수태골 지나 거북바위를 찾아갈 것이다. (202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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