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필: 3호선, 분명 대구의 명물이어라]
대구에는 지하철 1, 2호선과 지상철 3호선이 있다. 밤에 3호선을 탔다. 형형색색의 네온 불빛 위를 조용히 달린다. 용지역을 출발하여 범물, 지산역을 지나면 수성못이 들어온다. 이미 대구의 명소가 되어 버린 수성못, 한여름 분수쇼는 해를 거듭할수록 예술적 완성도를 더해 가는 느낌이다. 못물에 푹 빠진 사람들, 대구의 사랑이 살랑살랑 일렁인다.
수성못역을 지나 황금역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그야말로 황금이다.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라 황청동이라 했지만 황천동과 유사한 발음이라 지금의 황금동으로 고쳤다고 한다. 잘 정비된 실개천이 청계천을 흉내 내며 신천으로 흘러간다. 어린이회관역, 수성구민운동장역을 지나면 수성시장역이 눈에 들어온다. 민심이 오고 가는 재래시장, 역시 서민은 재래시장이 제격이다. 풀쩍 뛰어내려 콩국수 한 그릇 먹고 싶다.
대봉교역을 향하는 내 마음은 벌써 어린 시절 멱을 감고 놀았던 신천과 방천시장을 달린다. 김광석거리를 지나 대백프라자 벽시계가 손을 흔들면 건들바위역이 나온다. 김광석도 나도 한판 신명으로 오고 갔던 곳. 격세지감, 대백프라자 큰 벽시계가 꾸역꾸역 추억을 토해내면 명덕역이 손짓을 한다.
1호선 지하철과 만나는 명덕역, 환승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고 있다. 환한 미소, 대구지하철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절벽 같은 에스컬레이터가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며 승객들을 갈라놓는다. 송대관의 명곡 중 하나인 '차표 한 장', '사랑했지만 갈길이 달랐다~~ .너는 상행선~.나는 하행선~.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하나로 엮어버린 명덕역, 살짝 명덕역이 힘겨워 한숨을 짓는 것 같다. 한 무리의 꼬마들이 솜사탕을 입에 물고 신기한 듯 재잘거리고 있다. 열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은하철도 999'다.
꼼지락꼼지락 남산역을 지나 청라언덕역에 들어서니 2호선이 달려온다. 두류공원 불빛을 향해 가는 사람들, 두류타워가 환승객을 손짓하고 있다.
하늘을 달리면서도 지하의 1,2 노선을 묘하게 이어놓은 지상 3호선은, 그래서 하늘을 달리는 도심 속 희망의 열차다.
3호선이 들어서면서 대구의 민심이 밤낮으로 소통하고 있는 느낌이다. 조용한 수성못이 다시 출렁이고 재래시장이 날개를 단 듯하다. 작지만 동, 서, 남, 북,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어 지상을 달리고 하늘을 날고 있는 3호선 디트로. 고작 세 개의 차량을 묶어 앞뒤가 똑같은 모양으로 왔다 갔다 하는 3호선을 바라보면 마치 누에 두 마리가 교행을 하며 꿈틀거리는 것 같다. 정말이지 하늘을 날며 명주실을 마구 뽑아내는 대구의 명물로 거듭나면 좋겠다.
달성공원역, 북구청역, 원대역를 지나면 또 팔달시장역과 마주한다. 결국 3호선은 수성시장, 서문시장, 팔달시장을 다 품고 있는 셈이다. 뿐만이 아니다. 만평역, 공단역, 팔달역을 지나면 매천시장이 나타난다. 이렇듯 3호선은 재래시장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매천, 태전, 구암역을 지나치는 야경을 보노라면 불빛 속 들녘이 도심에 찌든 시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방금 지나온 현란한 야경이 그저 조용한 품속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칠곡운암역, 동천, 팔거, 학정역을 거쳐 마지막 칠곡경대병원역에서 멈춘다.
칠곡경대병원역은 암센터를 마주하고 있다. 암이란 말만 들어도 지레 겁이 나고 살짝 들떴던 마음은 가라앉는다. 암센터를 마주한 종착역이 주는 느낌, 승객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구시민 전문장례식장'(3호선 도시철도공사 칠곡차량기지 옆)이 있다. 검은 겨울철새들이 가끔은 길손을 쳐다보기도 한다. 용지역을 시발로 종착역인 칠곡경대역까지는 49분 남짓 소요되며 총 30개 역을 품고 달리는 3호선, 시발역이 종착역이요, 종착역이 시발역이다.
대구도심철도 1,2,3호선. 1,2호선이 혈기 왕성한 창조와 생성의 노선이라면, 3호선은 하늘을 나는 은하철도요, 남북을 가로지르는 여유로운 삶의 노선이다. 시간이 주워진다면 무조건 3호선을 한번 타 보라. 그러면 3호선이 왜 대구의 명물인지를 알 수 있다. 3호선, 분명 대구의 명물이어라. (2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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