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자작시&감상: 물새여 날아라]

백두산백송 2024. 4. 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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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감상: 물새여 날아라]


계절이 바뀌는 시기, 이상하게도 환절기가 되면 수필보다는 시에 자꾸 눈이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경계선에서 한 계절을 통째로 말아먹고 싶은 생각 때문이랄까. 한 계절이 지나가는 문턱에서  나는 계절이 남긴 이삭을 한 줄 시로 노래하고 싶을 때가 많다.

신천을 거닐다 한 마리 물새를 보았다. 멍하니 혼자 물을 보듯 하늘을 보는 외로움이 겹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마리 물새도 그놈의 사랑 때문에 멍 때리고 있는지......

조용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계곡물도, 미풍에 흩날리는 미세먼지도 그냥 흘러가고 흩날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깊이만큼 아픔을 동반한다. 물새여 날아라.

♤물새여 날아라/백송

바람을 따라가면 바람이 되고
물을 따라가면 물이 되는 것이
어디 사람 같은
인생뿐이랴

졸졸 흘러가는 계곡물도
거센 몸짓이 바닥을 헤집고
물살을 어루만진다

하물며 미풍에 날아가는
미세먼지도
그냥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심한 몸살 진통으로
온몸 가루가 된 뒤에야
비로소 하늘을 난다

바람을 따라가면 바람이 되고
물을 따라가면 물이 되는 것이
어디 사람 같은
인생뿐이랴

세상사 만물이란
하나같이

파도가 몰아치고
천둥이 하늘을 때리고
땅이 통곡을 한 뒤에야

그것이

사랑인 줄 깨닫는다

물새야 날아라


시를 쓰고 싶지만 시 같지 않은 시들이 나를 보고는 비웃곤 한다. 그렇다고 전혀 시심이 없는 것도 아니련만. 이럴 때 나는 슬그머니 이태수 시인의 시집을 들고 그의 시 탁마(琢磨)를 본다. 어떻게 하면 시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사실 썼다가 지운 말들이 어디 한둘이리요. 수십 번 탁마로 깎은 말들을 끝내 품지 못하고 던져야 하는 아픔을 글쟁이들은 안다. 그나마 둥글게 다듬은 마음도 마음줄 잠시 놓고 뒤돌아보면 모서리가 가슴을 콕 찌른다.

나는 이태수 시인을 대구 범물동 시인이라 부른다. 수성못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그의 모습이 범물 아닌 범물(凡勿)로서 멋있다. 시도 그렇다.


♤탁마(琢磨)/이태수

썼다가는 지운다
지웠다가 되살려 쓰고
고쳐서 다시 들여다본다

처음 떠올린 마음을 되짚으면서
바뀐 마음도 들여다본다

잘못 바뀐 것 같기도 해
주저하다 초심으로 되돌아간다

지웠던 마음 되살아나고
또다시 바뀌는 마음이
그 위에 포개진다

몇 번이나 지웠다가 살리고
고쳐서 다시 또 들여다본다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같이
같은 궤도만 맴돌았던 말들

그나마 둥글어지긴 했는지
깎인 모서리를 들여다본다

2022년 봄에 나온 이태수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에 실린 시다.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 (1979년)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18권 시집을 출판. 육필시집 《유등연지》(2012년)로 유명세를 떨쳤고, 매일신문 논설주간을 역임한 시인이다.  

열여덟 번째 시집을 묶으며
먼 하늘을 새삼 우러러본다.
내릴 건 내리고 비울 건 비우면서
마음을 담박하게, 정갈하게
낮추며 가려고 다짐해 본다.

2022년 벽두에 쓴 <시인의 말>을 옮겨보며 내 마음 추슬러 본다. 《물새여 날아라》, 이상하게도 환절기가 되면 수필보다는 시에 자꾸 눈이 간다.(20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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