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시,<넓어지는 원>]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이 시는 라이너마리아 릴케, <넓어지는 원>의 일부다.
이 시를 읽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지금 나 여기, 이 나이에 나는 어떤 원을 그리며 살고 있는가. 아니 지금까지 어느 정도의 원을 그리며 살아온 것인가.
자의든 타의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동심원은 축소되어 왔다. 특히 은퇴를 하고 난 이후는 스스로 좁혀 가기에 급급했다. 쉽게 타인을 멀리하고 타인 또한 쉽게 나를 거부한 듯 마음의 문은 점점 좁아졌고, 넓고도 높은 하늘은 나지막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기울어 가고 있다.
이제는 보는 것이 두렵고, 듣는 것이 괴롭울 때가 종종 있다. 마광수는 눈은 로고스요, 귀는 파토스라고 했다. 젊은 날의 이성과 감성은 이제 물 건너 간 느낌이다. 그만큼 보고 듣는 데서 오는 사유의 세계가 좁아졌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점점 멀어져 가고, 듣기가 귀찮아지니 타인의 감성 따위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좁아지고 고집이 세어진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일까. 마음을 비우고 비우면 그 마음이 비운만큼 넓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쪼그려 드니 빈 마음, 좁은 내 마음을 어이할꼬.
이 시를 두고 《시로 납치하다》의 저자 류시화의 말을 옮겨 본다.
언어의 거장으로 불리는 릴케(1875~1926)가 우리는 동심원을 그리며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확대되어 가며, 아마도 마지막 원은 어디선가 미완성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마지막까지 그 원을 넓히는 일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난 릴케는 9세 때 부모가 이혼했으며, 군사학교에 입학했으나 몸이 병약해 중태 했다. 이후 각지를 유랑하며 고독, 불안, 죽음에 대해 번뇌하다가 만년에는 산중에 있는 성에서 고독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자아의 원을 넓히는 일에 생을 바쳐 《말테의 수기》, 《두이노우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의 대작이 주로 만년에 탄생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살아 나가면서 원이 넓어지는 사람과 좁아지는 사람. 타인이 들어올 수 없는 옹색한 원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에 대한 무한한 수용으로 신까지도 그 원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릴케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떤 원을 그리며 살고 있는가? 메리 올리버는 썼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런 다음 그것을 잊으라.
그런 다음 세상을 사랑하라.
《출처: 시로 납치하다 더숲》(202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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