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자작수필&감상: 문경새재, 사람이 곧 문학이다]

백두산백송 2024. 4. 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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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석탄박물관

[자작수필&감상: 문경새재, 사람이 곧 문학이다]

조심스러운 빗길 운행을 바라보며 내 마음은 오로지 회원들의 안전이었다. "하루를 무사히", 이 말이 그렇게 절박하게 느껴졌음은 난생처음이다. 우리는 빗길 문경새재를 향하고 있었다.

문경새재, 내 기억으로는 두 번째 여행길이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제1관문뿐이다. 이십여 년 전 제1관문 앞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던 조랑말 몇 마리가 떠오른다. 희미한 기억,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문경새재란 단어가 주는 특이한 마력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러면서도 저 너머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 듯한 문경새재란 지역명 자체가 나는 좋다.

시집  '사평역에서'로 알려진 시인 곽재구는 '예술기행' 책머리에서  '인간이 역마를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쌓인 역마에 대한 욕망을 여행이란 말로 대체한다. 이승에서의 질긴 삶의 끈을 쉬 놓아버릴 수 없어 자동차를 타고 찜통에 아스팔트 길을 달려간다. 그리고 잠시 이승을 벗어난 듯 한숨을 쉰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삶과 그 주변에 펼쳐진 풍경들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과 그 의미의 건강한 불빛들을 다시 한번 되돌려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적인 것으로서의 자유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문경새재, 저 너머 저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에게는 재 너머의 세상은 시인이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지닌 공간'이리라.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막 '은성무연탄광', 이름하여 석탄박물관을 빠져나온  문우 김은향의 얼굴을 훔쳐보며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그녀의 수필 '하얀 세상을 꿈꾸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음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다가왔다.  아니 그녀의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 물론 약간의 내 감정이 이입되었겠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하얀 세상을 꿈꾸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림자가 봄비 속에 하늘거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살짝 상기된 얼굴에 빗방울이 눈물처럼 뺨을 젖시고 있다. 아마 사고 당시도 그랬으리라.

암흑 속에서 굴진작업을 하는 광부들의 모습,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니 막장에서 착암기를 들고 채광(採鑛)을 하는 광부들의 영상이 그녀의 얼굴에 겹친다.

광업소 사고가 난 그날은 '10.26. 사태'가 난 다음날이었다. 당시 그녀는 중학생. 등교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확성기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갱내 화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가족들은 갱 입구로 뛰어갔고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간절한 기도 때문인지 사고가 난 지 나흘 만에 그녀의 아버지는 구조되었다. 갱도 모서리에서 오줌으로 버틴 결과였다. 와락 달려가서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었으나  흐르는 눈물만 닦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무어라 손짓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하늘에 감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는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삶의 현장,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듯 그녀의 눈은 애처롭고도 슬펐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구수필 제38집》에 실린 그녀의 수필, '하얀 세상을 꿈꾸며'의 말미를 펼쳤다. 역시 수필가답게 긴 여운을 남기며 다시 은성 석탄박물관 막장을 떠올리게 한다. 명수필이 따로 없다. 이곳은 봄이면 하얀 조팝꽃이 절정을 이루는 그녀의 고향이다.  아버지도 그녀도 봄비 속에 하얀 조팝꽃이 되어 내 마음을 울린다.

'평생을 탄가루 속에서 살았던 아버지의 인생은 검은 인생이었다. 눈처럼 하얀 천에 검은 몸을 뉘어 먼 길 떠나시던 그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아버지는 암울한 세상에 마침표를 찍고서야 그토록 꿈꾸던 하얀 세상을 만났다. 나를 향해 손짓하던 그날의 아버지는 새하얀 꽃이 되어 내게로 왔다.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그날의 목소리가 꿈결인 듯 들려온다.'

문우들과의 문학기행은 늘 이렇듯 마음 한편 자리 잡고 있던 문심(文心)을 흔들어 놓는다. 나는 문학이 좋아 지금껏 문학의 하수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내가 문학을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일상의 내 벗이든 함께 수필로 동행하고 있는 문우든 그것은 상관없다. 살아보니 사람이 곧 문학이다. 사람이 시요, 수필이요, 소설이다.  

문경새재를 다녀온 문우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문학이다. 달리는 차창을 바라보며 누구는 시를 읊고 누군가는 서사를 풀어낸다. 말없이 앉아만 있어도 그는 음유시인이다. 창밖의 봄비는 묘하게도 진양조로 흘러가는 노랫가락 추임새가 된다. 이렇듯 문우들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은 늘 달리는 문학이다.  

인간은 곽재구가 말하듯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행을 꿈꾼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인생을 향한 아니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가는 작업이 여행인지도 모른다. 몸은 지역을 따라 움직이는 문학기행이요 답사지만 실은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인간을 찾아 나서는 '정신의 여행'이 곧 문학기행이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던 그 속에는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문경새재, 석탄박물관에서 내가 건져 올린 것은 한줌 검은 연탄재가 아니라 새카맣게 타들어갔던 문우의 까만 마음이 그 옛날 그 아버지와 함께 하얀 조팝꽃으로 피어난 부녀의 사랑이요 그리움이다. 사람이 곧 문학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흰쌀밥이 꿈이었던 시절, 채광(採鑛)의 몸짓이 하얀 조팝꽃으로 거듭난 부녀의 사랑과 그리움이  뜬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202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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