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자작수필&감상: 청산에 살어리랏다.]

백두산백송 2024. 4. 29. 09:13
728x90
320x100

[자작수필&감상: 청산에 살어리랏다.]

대구수목원을 지나 문씨 세거지를 따라 마비정 벽화마을을 걷다 보면 청산별곡이 입가를 맴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인흥서원이 생각보다 조촐하다. 인흥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조선후기 추계추 씨 4현을 제향 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어딘지 모르게 허접한 느낌이 들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듯한 서원이지만 장판각에는 1869년(고종 6)에 추세문이 편한 것으로, 유형문화재 제37호인 명심보감판본(明心寶鑑板本) 31매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소년은 이로하고(少年易老), 학난성(學難成)이라. 일촌광음(一寸光陰)이라도 불가경(不可輕) 하라. 미각지당(未覺池塘), 춘초몽(春草夢)인데 계전오엽(階前梧葉), 이추성(已秋成)이라.

세월은 빨리 흘러간다.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아직도 못 가의 봄풀은 꿈에서 깨어나지도 못하였는데 세월은 빨리 흘러 섬돌 앞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명심보감〉은 〈동몽선습〉, 〈천자문〉과 함께 조선시대 아동들의 한문교습서로 사용되었다. 2권 1 책으로 주로 유교적 교양과 심성 교육, 인생관 등에 관련된 내용들로 되어 있다. 여러 판본이 전하고 이들은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문씨 세거지

하늘은 눈살을 찌푸리며 곧 비를 쏟아 낼 것만 같다. 며칠 째 봄비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하얀 철쭉과 붉은 철쭉 길 따라 문씨 세거지로 발길을 옮겼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 인흥마을,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인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원래 "인흥사"라는 절이 있었던 폐사지에, 마을이 자리를 잡아 조선 후기의 전통한옥 9채와 문중 정자 2채를 잘 보존하고 있다.

광거당(廣居堂)

세거지 안쪽에는 광거당(廣居堂)이 있고, 정자 편액에는 추사 김정희의 서체로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란 글이 쓰여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이란 뜻으로 문중 자제들의 교육과 도서관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편액, 추사의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추사가  쓴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이란 여섯 글자가 떠오른다.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은 "단계 벼루와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이면 족하다"라는 뜻으로 소박한 선비의 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광거당(廣居堂)이 딱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나온 문익점 동상 앞에서 잠시 붓대롱 속 목화씨를 생각해 보았다. 고려말 공민왕 재위 12년 (1363년), 원나라 사신으로 간 문익점은 고려의 학자요 문신으로서  본관은 남평이요, 호가 삼우당이며 자는 일신이다. 붓대롱 속 목화를 최초로 재배한 곳은 경상남도 산청군이지만  여기는 대구 달성군이다. 그의 동상 앞 목화밭 조성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오고 가는 길손들이 더 잘 안다.

세거지를 뒤로 하고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로 들어섰다.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담벼락에 그려 놓은 그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는 몰라도 익살과 해학과 풍자가 깃든 그림들이 한판 신명을 부추긴다.

마비정을 알리기 위해 온몸을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골목길, 눈을 씻고 봐도 마비정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흘러온 민담이 마비정 마을을 전설로 남겼는가 보다.

마비정, 짓궂은 장군이 산 정상을 향해 활을 쏘고는 말로 하여금 쫓아가서 잡으라고 하니 아무리 천마인들 쏜살같이 날아가는 화살을 어이 잡을 것인가. 그렇게 화살을 쫓다 죽어버린 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마비정을 지었다고 한다. 전설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허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선후기 마비정 마을의 속내를 조금은 알 듯하다. 삶의 애환, 마비정 골목길 모퉁이에 허름한 집 한 채가 허물 벗은 뱀마냥 똬리를 틀고 있다.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 문씨 세거지가 비 오는 봄날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다.  즐비하게 들어선 미나리밭. 마비정 마을 사람들이 없는 말을 타고 세거지를 바라본 그 마음을 나름으로 헤아려 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온산이 미나리밭이요 미나리밭이 마비정 마을이다. 늘어선 미나리 식당이 몇 호점까지 있는지 모르겠다.

큰길 굽이돌아 하나로 연결된  인흥서원과 문씨세거지, 마비정 벽화마을이 봄미나리로 흠뻑  취했다.

가다니 브론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향 가득 입에 문 봄 미나리,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나무 가지 꺾어 잔 세어가며 끊임없이 먹세 그려". 장진주사(將進酒辭) 한 곡조에 한 사발 막걸리를 들이켰다.

청산이 좋다. 그냥 좋다. 그것도 미나리밭 청산이 나는 좋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2024.4.29)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