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수필 레시피: 계란 반숙]
나는 계란 먹기를 좋아한다. 완숙이든 반숙이든 다 잘 먹는다. 그런데 반숙 계란을 먹을 때는 꼭 어머니가 생각난다. 뜨거운 밥 속에 날계란 하나, 반숙의 계란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하얀 쌀밥에 계란 반숙 그리고 살짝 버터 발라 비빈 고소한 밥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장남인 내가 잘 되라고 어린 동생들을 뒤로하고 고봉밥에 하얀 날계란 하나를 파묻은 밥을 종종 해 주셨다. 참 이상하다. 모든 것은 푹 익어야 제 맛인데 하얀 쌀밥 속 계란은 설 익은 그 맛이 제맛이다.
딸애인 아네스의 집밥 영상을 보면 그 옛날 어머니 말씀이 되살아 난다. 하여 나태주 시인의 '수필 같은 시'를 보면서 어머니 말씀을 반추해 본다.
*어머니 말씀의 본을 받아/나태주
어려서 어머니 곧잘 말씀하셨다
얘야, 작은 일이 큰일이다
작은 일을 잘하지 못하면 큰일도 잘하지 못한단다
작은 일을 잘하도록 하려무나
어려서 어머니 또 말씀하셨다
얘야, 네 둘레에 있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해라 작은 것들 버려진 것들 오래된 것들을
부디 함부로 여기지 말아라
어려서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했다
자라면서도 끝내 그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다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얼른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 한 날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고 행복한 날이 없었다
날마다 날마다가 다툼의 날이었고
날마다 날마다가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이제 겨우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어머니 말씀 속에 행복이 있고
더 할 수 없이 고요한 평안이 있었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 젊은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작은 일이 큰일이니 작은 일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네 주변에 있는 것들이며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라
어머니 말씀의 본을 받아 타일러 말하곤 한다
지금껏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목을 매고 살았다
기를 쓰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만 애썼다
명사형 대명사형으로만 살려고 했다
보다 많이 형용사와 동사형으로 살았어야 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살았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예당초 그것은 당신 안에 있었고
당신의 집에 있었고 당신의 가족, 당신의 직장 속에 있었다
이제부터 당신은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집밥 동영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법. 흰쌀밥 속 반숙의 계란도 그렇게 익어가며 제 맛을 낸다는 것을 세월이 흘러 이제 깨닫게 된다. 줄탁동시(啐啄同時)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다 때가 되면 달도 찬다. 완숙을 향한 몸부림, 그것은 어머니의 하얀 쌀밥 속 반숙 계란에도 있었다.
계란을 반숙으로 먹고 싶을 때 익히는 방법, 우연한 발견은 에디슨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결코 우연이란 없다. 에디슨도 99%의 노력과 단 1%의 영감으로 발명가가 되었다. 수많은 시행 속에 반딧불이처럼 어느 날 찾아오는 영감,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노력의 결과다.
집밥 아네스의 반숙 계란 속에도 자식을 향한 사랑이 녹아 있으리라. 완벽한 반숙 계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아 보인다. 여태 이걸 왜 몰랐지......(202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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