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자작수필&감상:오이찬국]

백두산백송 2024. 9. 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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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찬국

[자작수필&감상:오이찬국]

토요일 오후 급한 일도 없고 마음이 느긋하였다. 퇴근길에 막걸리 생각이 났다. 동행하던 친구를 시장 근방의 대폿집으로 유인하였다. 한적한 홀의 의자에 앉아서 술을 청했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안주로 오이와 된장이 나왔다. 첫여름의 갈증을 씻기에 넉넉하였다. 막걸리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오이를 된장에 찍어서 잘근잘근 씹는 맛이 향긋하였다.

막걸리는 반도 안 줄었는데 오이는 바닥이 났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두 사람의 손은 오이를 담은 그릇에 놀았다. "아주머니, 오이 몇 점 더 주세요." 두 사람이 합창을 했지만 오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 저녁장을 안 봐와서 그렇다고 민망해했다. 윗물이 도는 된장만 바라보며 남은 주전자를 비우고 대폿집을 나왔다.

동료와 헤어져 귀가하면서도 자꾸만 입안에 맴도는 오이향 때문에 발길이 더디었다. 골목길을 돌아가는데 눈앞으로 채소를 가득 실은 용달차가 다가왔다. 마을 주부들이 빙 둘러서 흥정하고 있었다. 싱싱하고 풋풋한 오이를 담은 소쿠리에 눈길이 갔다. 염치 불고 주부들 틈을 헤집고 들어가서 오이를 한 바구니 샀다. 좀 양이 많은 듯싶었으나 마음은 흐뭇하였다. 결혼생활 몇 년 만에 처음 아내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이 들어 쑥스럽기도 하고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원망이나 듣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어설프게 오이 봉지를 안고 어깨를 크게 흔들며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층 집 초인종을 눌러 대문을 통과 현관문을 열었다. 그래도 인기척이 없었다. 평소와 달리 너무 조용한 집안 분위기에 행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살며시 방문을 여는 순간 뭔가 얼굴에 가득 뒤집어쓴 아내가 방안에 누워 있었다. 안도감이 들면서 화도 조금 났다. 그러나 모처럼 아내에게 잘해 주려는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억눌렀다. "당신, 뭐 해?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어디 아파." "미안해요. 어이 마사지를 하다가 잠이 들었나  봐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공교롭게 되다니, 얇게 썬 오이 조각들이 방바닥에 어지러 히 널려져 있었다. '마음먹고 사들고 온 오이가 아내의 마사지용은 되지 않으려는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쓰며 오이 봉지를 힘없이 아내의 머리맡에 놓았다.

''당신, 이게 뭐요. 무얼 사들고 들어오는 것이 처음이네.''
''그래 처음이다, 결혼하고 처음. ''
''고마워요. 얼른  오이찬국 해가지고 같이 먹어요.''

아내는 마사지하던 것을 거두고 주방으로 간다. 생글생글 웃으며 활짝 피는 얼굴이 그렇게 밉지 않았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오래 묵힌 신문을 읽었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 위에 놓인 오이찬국을 맛있게 먹었다. 얼음덩어리를 넣고 간을 그런대로 맞춘 것이 시원하긴 하나 구수한 맛이 덜 하다. 그것은 아내의 솜씨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까닭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비닐 속에서 자란 오이와 노지에서 자란 오이, 제철에 먹는 것과 이른 철에 먹는 맛은 다르리라.

대학시절 같은 학과 친구들과 함께 탐구학습 조사를 떠났다. 우리는 민담, 전설을 조사하는 파트였는데 별로 갈만한 데는 없고 고심하다가 할머니 댁에 갔다. 무더운 여름 친구들이 개울로 등물을 하러 간 새 할머니께서는 밥을 지으셨다. 손수 아궁이에 불을 집히시며 찬이 없다시며 행랑채를 돌아가시더니 오이덩굴을 헤집고 야구방망이 만한 큰 오이를 따오셨다.

아침저녁으로 오이가 크는 것을 보며 손자들을 기다리며 아끼시던 것이었다. 오이를 잘게 썰어 간장에 절이고 고명을 넣고 갓 길러낸 우물물을 채우셨다. 그렇게 하여 밥상 위에 오른 오이찬국. 할머니께서는 오이찬국을 '오이채물'이라 불렀다. 우리는 오이찬국에 뜨거운 보리밥을 말아 후후 불며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구수하면서 달콤하고 시원하면서도 오이향이 입안에 가득 배였다. 아마도 그 맛은 재료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할머니의 두툼하고 주름진 손등에서 나온 비결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아침 식전에도 오이를 한 두 개 따 주셨다. 공복에 먹으면 몸에 이롭고 위가 튼튼해진다고 하셨다. 우리들은 껍질 채 와삭와삭 깨물어 먹었다. 며칠 동안 기쁜 마음으로 고향 마을을 돌며 민담과 전설을 조사 채집하고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의  사랑을 뒤로하고서.

나는 오이찬국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오이채물'을 자주 떠올린다.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 재미란 속담도 생각난다. 오이를 가지고 비누를 만들든 마사지를 하든 나는 관심을 꺼버린다.

공복에 먹던 오이 생각이 나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막걸리 좀 사 오구려. 된장과 오이 몇 점도 내오고.''(오이찬국: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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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달리 더워도 너무 덥다. 입추와 처서가 지난 지도 꽤 되었지만 여전히 열대야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도시 전체가 찜질방이다. 대프리카 맞다.

오이찬국이 생각난다. 오이는 수확기가 유월에서 팔월이다. 마트 진열장에 놓여 있는 오이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된더위 때문에 오이뿐만 아니라 채소가격도 마찬가지다.

<1일 1 수필산책>으로 졸작 '오이찬국'을 보고 있다. 등단작이란 이름으로 책꽂이 한 편을 지키고 있다. 삼십 대 등단작 치고는 글이 템포도 느리고 서정과 서사가 탄력이 없다. 어찌 이런 글로 잡지사 문을 두드렸는지. 순간의 용기가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오이찬국이라 불리는 오이냉국 레시피가 철철 넘쳐난다. 여름 별미로 식객의 입맛을 돋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올여름에는 오이를 별로 먹지 못했다. 원체 더운 날씨로 오이가 여물기도 전에 불타버린 탓인지 오이를 제대로 맛볼 기회조차 없었다.

등단작품 오이찬국. 1993년 작이니 30년 넘은 작품이다. 오이찬국이라고 할까 오이냉국이라고 할까를 두고 고민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오이냉국도 오이찬국도 국어사전에 다 나오는 단어다. 흔히 즐겨 쓰는 오이냉국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오이찬국이라 고집했을까. 아마도 차가운 뜻인 한자 랭(冷) 자가 마음에 걸린 것으로 생각난다. 교육부 시책으로 국한문혼용이 폐지되고  한문이 국정교과서에서 사라졌던 영향이라 생각한다. 지나친 국수주의가 빚은 참사다. 지금 다시 선택하라면 나는 오이냉국을 선택하고 싶다. 사대주의니 뭐니 말들을 하지만 귀에 익은 단어로 쉽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도 글도 부끄럽고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내 글이다. 문단을 기웃거리다가 낚싯밥에 걸려 이런 글들로 아직까지 발버둥 치고 있다. 글이란 것이 무슨 마력이 있는지 '싫다~ 싫다'하면서도 타고난 팔자거니 생각하며 이렇듯 떨치지 못하고 있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오이를 들고 막걸리를 생각했으니 몸은 청년이요 행동은 실버다.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순진한 사랑과 수필을 향한 초심이 녹아 있는 글이니 나름 의미가 있는 글로 묻어 두고 싶다. 오이냉국이 당기는 계절이다. 오이, 오이냉국, 된장, 막걸리가 그리운 얼굴들을 마구 소환하고 있다.(20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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