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감상: 《진학단상》, 진학지도를 생각하다]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시대에 손바닥을 때리거나 지시봉을 들고 모의고사 성적을 빌미로 종아리를 치며 진학지도를 했던 생각을 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재직 시 진학지도 풍경을 소급한다면 나는 죽어도 몇 번은 죽었으리라. 그때도 안세영과 같은 투사가 있었지만 조용히 매를 맞고 사라지곤 했다. 세월이 나를 살려 준 셈이다. 시쳇말로 좋은 시절에 선생 노릇 잘했다고 보면 된다.
-1987년 고3 때였다. 당시 문교부는 희한한 정책을 만들었다. 선지원 후시험이었다. 그 전만 하더라도 학력고사를 치른 후에 점수가 나오면 점수에 따라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학력고사를 치르기도 전에 대학을 먼저 선택해야 했다. 즉 점수가 없는 상태에서 미리 대학과 학과를 지원하는 최초의 실험 대상이 되었다. 이 제도는 ‘수능’이라고 불리는 ‘대학 입학 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993년 사라졌다.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학교에 오셨다. 그 무렵에는 한복 패션이 거의 막바지 유행을 타던 때였다. 상견례나 입학식, 졸업식처럼 중요한 행사 자리에 중년 여인들은 한복을 입었다. 한 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던 어머니가 옅은 갈색 한복에 스카프를 두른 채 교무실로 들어섰을 때를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넥타이 없는 흰 와이셔츠에 체크무늬 재킷을 걸친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 그리고 나의 삼자대면이 이루어졌다. 국문과를 지원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어버린 것은 담임 선생님이 슬며시 내뱉은 ‘취직 잘 되는’이라는 말이었다. 영어만 하면 먹고살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이 어머니를 흔들었다. 전날 밥을 먹으며 국문과를 가서 글쟁이가 되겠다는 나의 뜻에 반신반의하던 어머니에게는 ‘영어’라는 말이 미국말을 넘어 대기업의 ‘해외 영업직’이라는 말과 동일시되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며 선뜻 결정을 못 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선생님은 안 되면 ‘교사’라도 할 수 있다는 영어교육과로 일침을 날렸다, 교사라는 미래가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을 때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나는 잊지 못한다. 하얀 가제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를 훔치시던 어머니는 ‘교사’라는 말에 당신의 역할을 드디어 다할 수 있다는 단단한 결론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그랬으므로 국어든 영어든 과목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결국 ‘영어교육과’를 1 지망으로 적었다.
선생님이 입학원서에 도장을 찍고 어머니는 동의란에 지장을 찍었다. 시골에서 자라고 도시 변두리 세상만 경험한 어머니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어머니가 아는 최고의 선망 직업이었다. 자전거 뒤에 도시락을 싣고 감색 양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출근하는 교사라면 교대든 사대든 안중에 없었고 나의 국문과에 대한 의지는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소리가 걸걸한, 억양이 거친 경상도 남자에게서 버터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어’와 ‘으’ 발음의 구별조차 어려운 영남지방 특성상 정확한 발음은 아예 포기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국어와는 달리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오고, 동사와 목적어가 뒤바뀌는, 그리고 모든 사람을 너 You라고 지칭하는 아래위가 영 없는 영어의 구조를 도무지 수용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경상도 남자였다.
대학에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영어교육과의 특성이 오로지 ‘영어’와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문학’에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미문학 시간에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마녀의 빵’을 읽으며 ‘어, 이것 봐라, 저 코가 크고 덩치가 산 만 하고 노란 수염이 덥수룩한 양코배기들한테도 이런 감성이 있었나?’라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때부터 무턱대고 영미 문학을 읽어나갔다. 시드니 셀던의 통속 소설과 스토우의 엉클 톰스 캐빈과 같은 노예 소설은 도서관에서 영어 사전을 뒤적이게 했다. 또 언제부턴가 팝송을 들었다. 이별과 사랑을 노래하는 팝송 가사는 어린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고, 녹음테이프를 돌리고 돌려 가사를 연습장에 받아 적게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당연히 꿈은 해외 영업이었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인사기획팀에 근무하게 되었다. 인사라는 것이 사람을 뽑는 일이고 사람을 평가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다. 그 일이 해외 영업을 희망했던 나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와는 관계없이 이리저리 거친 물결에 휩싸여 흔들리다가 나는 나의 전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문득 내가 영어교육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비록 몇 년간 학원강사와 기간제 교사를 전전했지만, 교사가 되었고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고 3을 담임하고 있다.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안다. 경험했으므로.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나라의 입시정책은 전과 마찬가지로 성적이 여전히 중요하다. 적성은 또, 성적에 따를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한복을 입고 학교에 오시는 학부모는 없다. 물론 나도 편안한 복장으로 학부모와 아이를 맞이한다. 수시 모집에는 여섯 개까지 지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오늘을 기억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그날의 선생님 말씀처럼 다만 내 입에서 나간 말들이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되어 돌아오면 좋겠다. 그리고 선택한 과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면 더할 나위 없겠다.-(수필: 진학단상/홍정식)
《진학단상》이란 문우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아날로그 시대의 진학실 풍경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작가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탄탄한 문장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감성을 자극한다.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아날로그 시대의 진학단상이다. 수필 《진학단상》, 한우로 치자면 1등급 한우다.
좋은 수필이란 끝까지 어떻게 읽었는지도 모르게 읽게끔 하는 수필이 좋은 수필이다. 고3 담임 앞에 앉아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그때 그 시절 학부모의 자화상이요 대유라면 대유다. 글 참 잘 쓴다. 역시 작가 맞다. 그는 영어교사 이전에 이미 국문학도요 수필가였음을 알겠다. 평소 그를 보면 피천득이 스친다.
재직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도 진학지도를 꽤나 오래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에 넘치는 직분이었다. 보람도 있었지만 애도 많이 먹었다. 진학지도는 물론 교사란 직업이 힘들다는 것은 퇴직을 앞두고 느꼈다. 그만큼 겁 없이 달려왔다는 말이다.
가을바람이 분다. 당선작, '못다 한 사랑의 노트 쓰기'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본격적인 진학지도와 글쓰기 작업이 시작된 것은 당시 세림이동통신이 주최했던 제2회 교사체험수기공모(1995)에 가작으로 당선, 상금 50만 원을 받으면서부터다. 역시 공모전에서의 수상은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용기를 주었고, 철부지 교사는 시나브로 겁 없는 돈키호테가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용기 하나가 그래도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 같다.
미당 서정주의 《자화상》이 생각난다. '교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패러디해 보니 어쩌면 나의 교직생활의 자화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교사란 직업, 어떻게 그 어려운 산을 넘어왔는지. 아날로그 시대의 진학지도,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세월 참 빠르게 흘러갔다.
수시모집과 함께 입시철이 다가왔다. ‘철’이란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대학입시 전형을 두고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그만큼 고민도 많아진 것 같다. 다양한 선택이 주는 자유로움이 오히려 학생과 학부모를 더욱 구속하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전벽해, AI시대의 전자책과 함께 '트렌드 코리아 2024 김난도의 화룡점정, 휴먼터치'...... 진학지도, 이제 정말 힘들 것 같다. 구수한 된장냄새가 나는 인간미 넘치는 수필, 《진학단상》을 나의 수필레시피로 또 한 번 얼버무려 본다.(202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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