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수필&감상: 뮤지컬, 선택]
봉산문화회관에서 뮤지컬, '선택'을 관람했다. 아담한 회관, 50명 내외의 관람객은 공연이 막을 내리자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며 배우들을 향해 일어서고 있었다. 젊은 배우들의 풋풋한 내음과 또렷하게 다가왔던 노랫가락이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탄탄한 구성, 극적반전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재창조된 《뮤지컬 '선택'》, 기존의 뮤지컬 양식에 우리나라 전통놀이 문화를 혼합하여 무대가 마당이 되고 마당이 무대가 되는 공간에서 9명의 케스트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한 청년의 현재와, 운명처럼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 이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자 때론 강렬한 몸짓과 차분한 목소리로 무대를 이어갔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전설, 하회마을에 고려 중기 허 씨들이 들어와 터를 잡고 살자 마을에는 알 수 없는 불행이 이어지기 시작, 어느 날 이 마을 허도령이 꿈을 꾸면서 탈을 만들어 굿을 하면 마을의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산신령의 계시를 듣게 되고 산신령은 탈을 만드는 동안 누가 훔쳐보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된다는 말을 남긴다. 이에 허도령은 탈을 남몰래 만들기 시작, 하나 그를 사랑하는 처녀가 허도령을 훔쳐보는 순간 허도령은 피를 토하며 죽게 되고 처녀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살을 해 버리는 비운의 연정, 이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처녀 귀신을 서낭신으로 모시고 매년 정월대보름 탈을 쓰고 동제를 올린다는 유래에서 비롯된 하회 별신굿 탈놀음.
그 모티브 속 미완의 꿈을 이루기 위한 허도령의 탈을 향한 집념을 극화하면서 한 무리의 탈춤보존연구회 회원인 이들은 탈춤의 재현을 시도하지만 우연히도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집안에는 불길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에 사로잡힌 전설 속 허도령 배역의 주인공 유복은 급기야 오른손을 다쳐 탈을 만들 수 없게 된다.
탄탄한 구성과 단순한 모티브에서 이어지는 선명한 극적요소는 관객들을 조용히 사로잡았다. 젊은 배우들의 깔끔하면서도 유연한 연기동작과 또렷하게 파고드는 노랫말이 웃음과 비탄을 자아내며 극은 어느새 반전을 치닫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우환의 연속, 전설 속 처녀귀신의 역을 맡은 홍이와 허도령으로 분장한 유복의 사랑. 현실의 삶이란 머피와 셀리의 법칙만을 생각할 수 없는 것, 어릴 적 유복의 친구였던 한 사나이와 더불어 유복이가 만들고자 하는 탈은 끝내 완성을 더해 가고 모두가 다시 한자리에 모여들면서 우연의 일치로 일어났던 불길한 일들이 오히려 더 큰 행복의 밑판이 되었음을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한판 신명으로 마무리하며 막은 내린다.
그렇다. 우리네 삶이란 아니 현재 내 눈앞에 닥친 불길한 일이나 불행도 이를 딛고 일어 선 순간 이것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잠시의 시련과 고통으로 소화된다. 어쩌다 일어난 불행의 연속, 어쩌면 철저히 외면당한 셀리의 법칙 앞에서 나 또한 머피의 법칙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한번 수렁에 빠진 잘못된 집착과 아집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나를 향한 저주인 양 하던 일들을 포기하고 무의미한 나날을 얼마나 많이 서성이며 보냈던가.
비롯 소극 뮤지컬, 화려한 무대나 이런저런 조명으로 현란한 극은 아니었지만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택'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 작다면 아주 작은 뮤지컬 하나가 이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며 내 삶의 고삐를 당길 줄이야.
언젠가 보았던 대구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창작뮤지컬을 위한 지원 문화사업의 하나지만 이처럼 소시민들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며 문화의 지평을 넓혀가는 이런 문화 사업에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때론 엉뚱하게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불길하고도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릴 때 한 번쯤 하던 일을 접어 두고 봉산문화회관을 찾아라. 그러면 어느 날 당신도 나처럼 의외로 상실한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택', 살짝 비켜보면 우리네 삶이란 극 중 대사처럼 머피와 셀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봉산문화회관, 두어 시간 남짓 '선택'을 관람하고 뒤돌아 본 도심 속 아담한 문화회관이 그날따라 큼직하니 가슴을 파고들었다. '선택', 이것은 다름 아닌 내 운명이요, 내 삶이란 것을~.(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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