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필레시피: 3호선 여정, 용지역]
대구지하철도 3호선을 타면 '하늘길'과 '사람길'이 보인다. 남북을 휘돌아 오고가는 3호선, 주변 풍광이 나름 즐겁다. 용지역에서 칠곡역, 칠곡역에서 용지역까지 30개 역을 오르내리며 역 따라 마음 따라 '하늘길', '사람길'을 톱아보고 싶다.
바람을 타고 내렸다. 용지역이다. 가을바람도 겨울바람도 아닌 마음바람을 타고 내렸다. 11월 7일, 절기로 입동이지만 아직 가을 내음이 묻어 있다. 종착역이 주는 고요랄까. 역사가 조용하다. 몇몇 승객들이 내리고 마지막 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객실을 비웠다.
용지역은 대구도시철도 3호선의 남쪽에 위치한 시종착역이다. 승객이 다 내리고 난 다음 빠르게 객실 청소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내가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는 이유를 알겠다. 종착역에서 어떻게 회차를 하는지도 궁금했다. 열차가 그대로 멈추어 있는 상태에서 좌우 선로가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열차의 꽁무니가 다시 앞을 향하게 한다. 자동제어장치로 처음과 끝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회차로가 되어버린다. 머리가 꽁지가 되고 꽁지가 머리가 되는 3호선은 그냥 로봇열차다. 신기하다. 목적지와 상관없이 한 번쯤 타 보고 싶은 도심 속 '3호선'이 개통된 지도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용지역의 교각높이는 18m로 3호선 역 중에서 제일 높단다. 이름만 보면 용이 꼬리를 흔들고 비상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지만 龍池(용지)에는 용(龍)이 없다. 다만 용지봉을 배경으로 용지아파트와 크고 작은 집들이 깃들어 있다. 하늘길, 머리를 돌려 다시 칠곡을 향해 가는 3호선 지상철이 내 눈에는 한 마리 용이다.
용지역 하면 용지봉도 용지봉이지만 용지봉을 향해가는 진밭골을 빼놓수 없다. 그리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은 계곡, 나는 무시로 진밭골을 오르내리며 상념에 젖곤 한다. 잘 정비된 계곡길에는 아기를 생기게 해 준다는 '소원바위'가 있고 백련사란 절이 있으며 계곡 높은 하늘에는 십자가도 걸려 있다. 계곡 따라 길이 있고, 길 따라 사람이 오고 가는 이 길을 나는 좋아한다. 언젠가 찍어 둔 진밭골 대덕지 호수가 한 폭의 그림이다. 용지봉에서 내려온 물이 대덕지를 이룬 모양이다. 들국화 꽃길 따라 마음길이 용지봉을 향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진밭길 호수 정자에 책이 꽂혀 있다. 누구의 발상인지 인상적이다. 견물생심, 책을 보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이라. 송나라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므로 일촌의 광음이라도 가벼이 하지 말라' 정자 난간에 앉자 한 구절 읊어 본다.
오늘도 용지역 내려 진밭골을 돌아 용지봉을 향해 가는 바람이 꽃바람이다. (202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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