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필레시피: 3호선 여정, 범물역]
대구지하철도 3호선을 타면 '하늘길'과 '사람길'이 보인다. 남북을 휘돌아 오고가는 3호선, 주변 풍광이 나름 즐겁다. 용지역에서 칠곡역, 칠곡역에서 용지역까지 30개 역을 오르내리며 역 따라 마음 따라 '하늘길', '사람길'을 톱아보고 싶다.
범물역 앞에서 호떡 한 봉지를 샀다. 한겨울에 군밤과 같이 먹어야 제맛이지만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호떡을 즐길 수 있다.
재래시장도 없는 범물 네거리에는 생각보다 먹거리가 많다. 동아백화점과 대구은행을 끼고 있는 범물은 항상 붐빈다. 범물역을 가운데 두고 용지 방면과 지산 쪽으로 크고 작은 상점이 즐비하다. 좌판 고구마, 양파, 대파가 범물을 지키며 동아백화점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범물(凡勿), 옛날 이곳에 범이 많이 내려와 범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범물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구전에 의한 지명의 유래가 조금은 어색하다. '무릇 말라(凡勿)'는 지명(地名)이 범(虎)의 울음소리를 짐짓 경계했음인가. 시공을 넘나드는 범어천 수성못역 옆에는 수성구의 발전을 기원하는 '범어약천(泛魚躍天)'을 새긴 돌비석과 함께 하늘을 향한 '물고기 한 마리'가 사계절 물을 뿜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골 깊은 범물이 범어천을 파고든다. 푹 익은 범물(凡勿), 범어약천(泛魚躍天)과 더불어 연비어약(鳶飛魚躍)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용지, 범물, 지산을 조용히 오고가는 3호선, 살짝 방향을 틀어 범어천 자락으로 발길을 돌리면 흐르는 물과 함께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란 시비(詩碑)를 마주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정호승, 수선화에게, 전문)
연비어약(鳶飛魚躍), 한 때 한 시절, 범물을 주름잡았던 어느 낭객의 한시름을 《수선화에게》란 시로 달래 본다.(202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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