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필레시피: 3호선 여정, 황금역]
황금역에서 집까지 도보로 8분 정도 걸린다. 세칭 역세권에 보금자리를 둔 나는 이런 점에서 황금역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사통오달, 황금네거리는 늘 붐빈다. 정형의 동서남북, 황금네거리 중심에 황금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황금역의 행정 소재지가 황금동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역명은 황금역이지만 황금역이 있는 곳은 두산동이다. 두산(斗山)보다는 황금(黃金)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황금역의 명칭을 생각하면 피씩 웃음이 나온다. 요즘 황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황금네거리, 두산동과 황금동 사이에 '대우트럼프수성'과 'SK리더스뷰 주상복합'이 있고, 역사(驛舍) 바로 옆에 '홈플러스 황금점'이 있다. 역시 황금이 황금을 품은 동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황금동에는 황금이 없다. '황금동'의 원래 동명은 '황청동'이었으나 동명(洞名)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1977년에 '황금동'으로 동명이 개칭되었다고 한다.
황금역을 중심으로 서쪽을 향하면 중동교가 나오고 중동교 아래는 신천이요, 신천둑을 넘어가면 방천시장과 향토 백화점 대백(DEBEC)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방천시장과 이어지는 대봉시장에서 자랐다. 이렇고 보면 나의 삶은 신천을 경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살짝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요컨대 서쪽에서 자라 동쪽에서 늙어가고 있다. 그러니 내 인생은 그저 우물 안 개구리다. 반경 십 리를 두고 왔다 갔다 한 인생,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대우그룹의 창업주 고 김우중 회장의 저서를 생각하면 쪽박서생도 이런 서생이 없다.
긴 길 짓궂은 여정, 삶이 길이고 길이 곧 삶이다. 짧은 길, 긴 길, 좁은 길, 넓은 길, 길이 다양하듯 우리네 삶도 다양하다. 다양한 삶의 길, 어떠한 형태의 길이든 그래도 어지럽게 갈 수는 없다.
함부로 걷지 말고 가자.
'눈 내린 벌판을 걸어갈 때에
어지러이 걷지 말라/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니라/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뒤돌아보니 서쪽에서 자라 동쪽으로 자리 잡은 세월이 한평생이다. 참으로 긴 세월, 한 곳 한 자리에서 헐레벌떡 살아왔다. 주택가 긴 골목, 이재(理財)에 밝지 못한 서생은 오늘도 황금역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고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서녘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다.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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