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시장역이다. 3호선 30개 역 중에서 시장역은 수성시장, 서문시장, 팔달시장, 매천시장 네 곳이다. 이들 시장은 모두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을 끼고 이어지는 3호선, 1.2호선 노선에 비해 푹 익은 삶의 노선인지도 모르겠다. 반월당을 빠르게 관통하는 1.2호선과는 달리 재래시장을 이어가는 3호선은 그래서 항시 여유로운 노선이다. 시장역이란 역명을 붙이지 않아서 그렇지, 3호선 주변에는 이름없는 재래시장도 많다. 칠곡운암역도 실은 재래시장에 버금가는 먹거리시장을 마주하고 있다.
그때도 그랬다. 파, 시금치, 귤, 도라지를 다듬어 팔던 할머니도, 도로 위 좌판 과일을 주워 담던 아저씨도 하나같이 빼놓을 수 없는 재래시장의 모습이었다. 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생도 재래시장에서 시작해서 재래시장에서 막을 내렸다. 덩달아 내 삶도 어린 시절 대봉시장과 방천시장을 거치며 서문시장을 끝으로 출가를 했다. 그렇고 보니 시장바닥에서 자란 놈치고 아직까지 손발이 곱긴 곱다. 시장판 먹거리 골진 골목, 두 분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도 없었으리라. 재래시장 좌판을 지나칠 때마다 어린 시절 두 분의 그림자를 밟고 가는 기분이다.
세월 흘러 뒤돌아 보니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가 딱 맞는 말이다. 못다 한 효심을 이제 와서 한탄한들 무엇하나. 한시외전(漢詩外傳), 풍수지탄(風樹之嘆)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수성시장역에 내리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집이 인근 울진참가자미집이다. 이 집에서 한 번이라도 물회를 먹어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되어 있다. 나는 물회보다 활어회나 고추장비빔회를 좋아하지만 물회도 고추장비빔회도 다 맛있다.
도다리와 전복과 가자미로 비빈 비빔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세상사 부러울 것 없지만 재래시장을 거쳐 온 나는 목이 멘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 길이 없을세
그로 설워하나이다 <노계 박인로>
어린 '육적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오늘따라 늦가을 바람이 스산하다.(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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