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심철도 3호선에서 역사(驛舍)의 크기로 보면 남산역이 가장 크고 높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역사가 항공모함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명덕역에서 남산역으로 가는 느낌은 꼭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 같다. 하늘을 향해 이륙하는 느낌, 계명네거리를 치고 올라가는 품새가 하늘을 비행하는 '은하철도 999'다.
남산역의 남산은 실은 동네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남산동이란 남산이 있어 남산동이 아니라 남산이 보이는 동네라 하여 남산동이라 했다. 하여 역사(驛舍)가 남산동에 있기에 남산역이란 역명(驛名)이 붙여졌단다. 여기서 남산이란 앞산이 아니라 눈앞의 두류산이다.<나무위키 참조> 남산역의 역명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남산 ~남산'하니 3호선 30개 역사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역사일 수밖에 없나 보다.
대구에는 남산여고가 있었다. 처음 설립 당시 남산동(현 동산동) 신명여학교이란 이름으로 설 립, 이후 1945년 광복과 함께 교명을 신명여자중학교로 했다가 1953년 대구남산여자고등학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2003년 대구남산여자고등학교를 대구남산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및 (남 · 녀공학)으로 전환했고 학교도 대구 수성구 신천변으로 옮겼다. 역시 남산역 높이만큼이나 길게 '남산~남산'하며 대구남산고등학교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졸업한 학교도 아닌데 길게 되돌아본 여유는 두 가지다.
70년대, 고등학교 시절에도 봄이나 가을에 각 학교별 종합 예술제를 개최했다. 한마디로 학교를 완전 개방하여 학교 홍보는 물론 고교생들의 온갖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했다. 축제 기간 동안 종합예술제에 걸맞은 노래와 춤과 시화 전시 및 문예작품 등 등, 학교의 전통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축제가 남녀 고등학생들을 흥분과 설렘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남녀학생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며 끼를 부렸던 시절, 돌이켜 보니 참 흥미로웠던 시절이다.
우리는 남산여고를 신명여고라 불렀다. 이름하여 SM, 특히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신명여고는 문예활동으로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독서토론을 했던가 하면 학예발표를 통해 청춘 남녀의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며 문학소년으로서의 꿈과 사랑을 주고받기도 했다.
춘원 이광수의 우리나라 최초 근대장편 소설인 《무정》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인 '이형식'과 '영채'와 '김선영'을 생각하면 된다. 소설 무정에서는 당시 1907년 빈민구제 활동인 수해 현장을 오가며 사랑을 엮어 갔지만 우리는 문예활동 동아리를 통해 때론 우정과 어설픈 만남의 달콤함을 맛보기도 했다. 남산역에 오면 온통 내 머릿속에는 그때 그 시절 SM여고생의 보조개만 가득하다. 꿈과 낭만과 앳된 청소년 시절, 설렘으로 가슴 졸였던 그 여고생도 이제는 반백의 머리를 하고 조용히 익어 가리라.
또 하나의 이유는 딸애가 대구 수성구 명문인 남산여고를 남녀공학이 되기 전에 졸업했다. 벌써 딸애가 불혹을 앞에 두고 있으니 세월 참 많이 흘렀다. 남산여고를 졸업, 고이 잘 자라 아이들 셋의 엄마가 되어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듯 남산역에서 남산을 생각하면 남산여고가 생각난다. 꿈과 사랑에 살짝 눈이 멀어 사랑편지를 주고받았던 남산여고가 딸애의 졸업식날 영상과 함께 지금 3호선을 타고 남산역을 향해가고 있다. 시공을 넘나드는 추억과 낭만의 남산이란 두 음절 한 단어는 아직도 가슴 설레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남산역이 좋다. 추억과 낭만이 남산역만큼이나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밤이다. 남산역은 밤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 남산역 최고다.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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