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따라 글 따라]: 일상 & 수필 레시피

[일상&수필 레시피: 3호선 여정, 청라언덕역]

백두산백송 2024. 11. 27. 23:53
728x90
320x100

 

청라언덕역에 내리면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도 아닌데 할 말이 많아진다. 맛있는 음식이 자꾸 입맛을 당기듯 틈만 나면 가보고 싶은 역이 청라언덕역이다. 청라언덕을 중심으로 '근대路의 여정'이 반월당으로 이어지며 먹을거리, 볼거리가 서울로 치자면 인사동이나 경복궁 돌담길 같은 느낌을 준다.

청라(靑蘿)는 푸른 담쟁이넝쿨을 뜻한다.
역명의 유래는 청라언덕에서 따온 것이다. 청라언덕은 동산의료원 뒤에 있다.  청라언덕 역에 내리면 그냥 발길이 청라언덕 쪽으로 향한다. 가는 걸음걸음이 '근대路의 여정'이다.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  '동무생각'이 입에서 줄줄 흘러내린다. 노래비 앞에 섰다. 노랫말이 고향생각이고 고향생각이 동무생각이다.  울림이 깊은 노래다.  한바탕  추억이 지나가고 어린 시절 보았던 달구지가 눈에 들어온다. 향수는 이래서 가슴을 시나브로 저리게 한다.

청라언덕 노래비를 보는 순간 '근대路의 여행'은 시작된다.

3.1. 운동 만세길은 돌계단으로 되어있다. 오르내리는 계단길 자체가 호흡을 가쁘게 한다. 절박하고도 간절한 3.1. 운동의 촉발이 고종황제의 서거다. 계단 돌벽 따라 3.1. 운동은 요원의 불길로 타오른다. 내 발바닥도 불이 붙었다. 90 계단 만세길이 '3.1. 운동 만세길'이요, '9988 삶의 계단'이다. 나라가 있어야 '99세까지 88'하게 살다 갈 수 있다.

청라언덕만을 돌아보는데도 한나절이 부족하다. 도도한 역사의 어제와 오늘을 주마간산으로 훑어가는 발길이 그저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의료박물관 앞에 섰다. 월평균 6000명 이상이 찾는 대구의 명소란다. 선교사가 남긴 의학서적과 의료기기, 사진 자료, 근대 유물 등 8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눈앞의 의료박물관은 1910년경에 건립된 선교사 챔니스가 살던 집이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 집을 의료박물관으로 개원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수리 중으로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의료박물관이 드라마 '각시탈'과 '사랑비'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박물관  앞 선교사  존슨이 심은 국내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와 헐벗은 배롱나무가 자꾸 나를 쳐다본다.

제중원이 복원되어 얼굴을 내밀고 있다. 1899년 설립된 제중원, 의사인 존슨 선교사가 머슴들이 쓰던 작은 초가집을 개조해 세운 제중원(濟衆院)은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모태다. '고통받는 민중을 구제하고 치료한다'는 의미를 담은 대구, 경북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라고 한다. 제중원 왼쪽을 돌아가면 2023년 문을 연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이 있다. 코로나로 고생한 탓에 보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코로나가 남긴 육체적, 정신적 불안과 고통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이어질 것 같다.

아래 글은 <2024년 5월 20일 자 경북일보 > 기사 내용 일부다.

박문희 계명대 동산의료원 홍보팀장은 "대구동산병원이 품은 '코로나19 기억의 공간', '청라언덕',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선교사 주택, '3·1 운동길'에 이어 초가로 된 '제중원'까지 재현함으로써 선교사들의 복음전파와 치유라는 의미를 더하게 됐다"라면서 "125년 전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한국땅에서 희생정신과 개척정신을 보여준 선교사들의 역할과 그 가치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제중원' 재현의 가치는 매우 크다"라고 강조했다.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이 허물어진 담장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아프고 힘든 자여! 이리로 오라. '종'은 복음전파를, '두 기둥'은 의사의 굳건한 정신을, '바닥의 디딤돌'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한단다.  초창기 선교사들의 실천적 박애와 희생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구석구석 의료공간이라 청라언덕이 바로 동산의료원이다.

1893년 설립된 대구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를 돌아 다시 '3.1. 만세운동길'로 접어드니 길 건너  계산성당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하나님과 하느님이 은총 가득한 제중원을 바라보고 있다.

청라언덕역에 내리면 청라언덕을 꼭 방문하면 좋겠다.  '근대路의 여행', 골목길 밤마실 투어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역사가 남긴 발자취는 밟아야 빛이 난다. 아니 밟을수록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1894년 갑오개혁,  급속한 근대로의 이행이 국권 침탈로 이어질 줄 어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근대路의 여행', 골목길 투어가 마냥 즐겁지만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까운 반월당 독립운동가 '서상돈 고택'과 항일운동가 '이상화 고택'이 길손의 발길을 무겁게 한다. 국채보상운동에 이은 국권회복의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90 계단 만세길 계단'이 작금의 좌우대립을 되돌아보게 한다.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 '동무생각'이 아련한 봄의 고향곡으로 울려 퍼진다. '나는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2024.11.21)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