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필레시피: 3호선 여정, 수성못 TBC역]
수성못역에 내리면 그냥 수성못으로 몸과 마음이 간다.
수성못은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조성되었다. 수성천변에 농수의 부족을 해결하고자 지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이 아직도 미담으로 전해 온다. 수성못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던 그는 지금도 수성못 인근에 잠들어 있다. 그의 이름은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
대구시는 대구 12경을 1) 비슬산군립공원, 2)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3) 강정고령보 - 디아크(The ARC), 4) 신천, 5) 팔공산자연공원, 6) 수성못유원지, 7) 83 타워, 8) 서문시장, 9) 대구스타디움, 10) 동성로, 11) 달성토성, 12) 경상감영공원으로 지정, 대구로드트립으로 관광홍보하고 있다.
수성못은 이처럼 대구의 12경 중 하나로 '인자수성(仁者壽城)'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자수성(仁者壽城)'이란 수성구를 일컫는 말로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깨끗한 삶터'를 의미한다. 2Km의 둘레길엔 왕벚나무와 각종 가로수들이 있고 코스모스와 갈대, 그리고 바늘꽃과 여유롭게 노니는 오리 떼들이 있다. 뿐만이 아니다. 밤이면 화려한 분수쇼와 이런저런 버스킹이나 각종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상화동산의 상화는 민족시인 이상화를 말한다.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비(詩碑)는 물론 일제 암흑기의 문단사의 한 단면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상화동산을 길거리 '도보문학관'으로 조성해 수성못을 찾는 이들에게 부지불식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나라가 있어야 시도 있고 도시철도도 있다. 국권회복 의지, 그래서 그는 한용운, 윤동주, 조지훈과 더불어 민족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1926.6. 개벽 70호 발표)
상화와 함께 상화시비(詩碑)가 가을단풍을 즐기고 있다.
시나브로 수성못이 어둠 속에 깃들고 있다. 해넘이 시간의 수성못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아름다운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인은 사랑을 느끼고 과객은 추억과 낭만에 젖게 된다.
수성못을 가까이하고 있는 나도 수성못에 어린 추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리 새끼 두 마리가 물장난을 치고 있다. 지금은 모두 출가하여 각기 일가를 이루고 있는 딸애와 아들 녀석도 수성못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꼭 수성못 오리새끼들 마냥 어미를 졸졸 따라다녔던 녀석들, 양념통닭을 시켜 놓고 함께 해넘이 수성못을 바라보았던 그때도, 수성못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래, 아름다운 수성못을 머리맡에 두고 자란 탓인지 곱게 잘도 자라 제 갈 길 가버린 녀석들이 오늘따라 무척 보고 싶다.
'고맙게 잘 자란 보리 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수성못역에 내리면 수성못이 나보다 먼저 손짓한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해 저무는 수성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온갖 추억과 상념들이 끝이 없다. 참 세월 많이 흘렀다. 노을 져 가는 인생, 시인 상화가 거닐었던 이 길,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저만치 멀어져 간 오리 새끼 두 마리가 다시금 홰치며 다가온다. 살랑살랑 일렁이는 물결 속에 녀석들도 웃고 있다. 하여 수성못역은 다름 아닌 추억과 낭만의 수성못이다.(202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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