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제1화 <마라의 죽음>의 줄거리와 의미를 리뷰해 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나이 27세 때 쓴 데뷔작이다. '마라의 죽음, 유디트, 에비앙, 미미, 사르다나팔의 죽음' 등 5화로 구성되어 있다.
제1화, <마라의 죽음>을 통해 작가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란 상징적 표제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제1화 <마라의 죽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자코뱅당의 거두 마라가 살해를 당했다. 마라를 죽인 샤롤로트 코르테라는 여자는 지롱드 당의 청년 당원이었다. 나이 스물다섯, 사건 직후 체포된 확신범 코르테는 사일만에 처형되었다. 자코배당은 혁명파요 지롱드 당은 온건파다. 혁신과 온건 양파의 치열한 대립 속에 고립된 프랑스 왕정기, 마리가 죽은 후 자코뱅당의 우두머리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극에 달한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 또한 기요틴(단두대)에 의해 목이 잘린다. 단두대는 1792년 프랑스혁명 때부터 사형도구로 사용되었지만 1981년 프랑스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진 형틀이다.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는 도입부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일까.
우선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소설 제목에 나는 매력을 느꼈다. 제목이 형이상학적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누가. 스스로. 파괴란 죽음이다. 결국 나는 죽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죽음도 선택적 권리다. 죽음의 문제. 마라도, 유디트도, 사르다나팔도 죽었다.
자코뱅당의 거두 마라의 축 쳐진 팔을 그린 다비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거대한 혁명도, 조국을 위한 희생도 결국은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마라는 피살당했다. 소설 속 화자는 다비드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다비드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격렬하게 투쟁하다가 펜을 잡고 쓰러진 마라를 지극히 담담하게 묘사한 것에 대한 경외인 것 같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 작가는 말한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라고.
화자는 죽음을 직전에 둔, 아니 죽고 싶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상담사요 작가이다. 그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그런 경험치는 작품의 소재가 된다.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아버지에게 강간당하는 소녀로부터 입대를 앞둔 동성애자, 남편 몰래 정을 통하는 여자, 남편에게 맞는 여자까지 다양한 번뇌를 가진 이들과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상담자로서 그의 고객을 선택한다. 고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라고 한다. 고객과의 관계, 화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감한 선택을 시도한다. 그의 시도는 일종의 도발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를 강간한 소녀에게 아버지를 죽여라고 한다. 이런 류의 강한 도발로 상담자의 성향을 파악한 후 상담자를 선택한다. 화자의 독특한 고객선택 방법과 주도면밀한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단 선택이 되면 선택된 고객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전시회나 영화를 보기도 하며 때로는 함께 여행을 하며 상담자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길을 간다.
화자는 말한다.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이라고.
제1화 <마라의 죽음>은 이 소설의 서장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두 여인의 죽음을 통해 극적 긴장감이나 반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단지 '마라의 죽음'을 통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표제의 의미를 표징하고 있을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위대한 극작가보다 훨씬 후대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피의 분출은 시(詩)이다. 그건 막을 도리가 없다." 이 시를 쓴 그녀는 가스오븐의 밸브를 열어놓고 자살했다.
내 고객들은 실비아 플라스 같은 문재(文才)를 지니지 못했을 뿐 , 삶의 마지막을 그녀만큼의 아름다움으로 장식해 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쓴 글들이 이제 열 편을 넘기고 있다. 이제 이들을 세상으로 내보낼 작정이다. 나는 아무 조건 없이 이 글들을 봉투에 넣어 출판사로 보내버릴 작정이다. 그러고는 형체 없이 숨어 내 의뢰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생하는 장면을 지켜볼 것이다.'
제1화 <마라의 죽음>에 이은 나머지 남겨진 이야기들에서 작가의 말처럼 각기 특수한 상황에서 죽어 가는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하는 장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죽음이 <마라>처럼 담담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치졸하며 구역질 나는 죽임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리고 우리는 '나는 나를 파괴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단지 남은 네 가지 이야기 속 죽음에 대한 의미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이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뒷면 표지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
-넋을 빼놓는 작품
-스타일리시하다.
-뻔한 것과는 매우 거리가 먼 작품
-매우 통렬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
-김영하의 소설은 예술 위에 지은 예술이다. 그의 문체는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고 그림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과 클림트의 <유디트>와 영화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의 이미지에 기대고 있다. 삶이 무가치하고 보잘것없다는 소설 속 철학은 카뮈와 사르트르를 연상케 한다.
-애간장을 녹이는 데뷔작. 진실과 죽음과 욕망과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 강한 문학적 탐구.
이 작품은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네덜란드, 폴란드, 터키, 베트남, 아르헨티나, 체코,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출간된 작품이다.
세계의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작가 김영하는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 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등이 있다.
<마라의 죽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녀의 죽음도 자신이 선택한 선택적 죽음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무가치하고 보잘것없는 내 삶을 되돌아본다.(2024.12.7.)
'[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읽기&감상: 고금소총 한 토막] (74) | 2024.12.13 |
---|---|
[수필&감상: 해와 달의 시간] (64) | 2024.11.27 |
[산문&감상: 작심삼주 (오)늘 (블)로그 (완)성, 챌린지 함께 해요] (67) | 2024.10.31 |
[산문&감상: 수필산책: 배꽃 여인, 배꽃으로 거듭나다] (44) | 2024.10.26 |
[산문&감상: 소설《한강》, 보면 볼수록 아프다] (39) | 2024.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