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게 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린다. 군고구마가 당기는 계절이다.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후후 불며 고금소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금소총은 조선 중기 홍만종이란 사람이 ‘옛날과 지금의 우스갯소리’를 끌어모아 편집한 이야기책이다. 쉽게 말하면 나이 좀 먹은 싱거운 사람들이 즐겼던 음담패설이다. 듣기 좋게 말하면 설화요 설화 중에서도 민담, 또는 야담이라 한다.
고금소총에는 적어도 총 54편이 실려 있다고 하나 진본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도서출판 움터미디어'에서 출판한 조그만 책에는 150편이 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저런 이본들에서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게 각색을 하거나 윤색하여 재 편집해서 엮은 이야기들로 보인다. 어쨌거나 남녀 성과 관련된 패설들이고 보니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거나 심한 경우 배를 움켜쥐게 한다. 고려 말기 이제현의 수필집 역옹패설도 심심풀이 읽을거리란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우스갯소리 한 둘을 보아도 정말이지 웃긴다.
결혼식 전날 어머니가 딸에게 성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딸아, 내일 밤 신랑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 실망하면 안 된다 알았지"
"무슨 짓이라니요? 어머니"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자면...... 음, 그래 아까 길에서 개 두 마리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너도 보았잖니. 바로 그런 일이다."
다음 날, 집으로 달려온 딸이 화를 내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신랑이 개처럼 하지 않아서 그냥 왔어요."
가끔은 한 토막의 패설이 무료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요즘 고금소총을 다시 보니 그 맛이 된장국 맛이다. 생된장 한 스푼에 붉은 고추 한 둘에다 두부 한 모를 넣고 끓인 맛이 꼭 고금소총 한 토막 맛이다.
남편이 임종을 앞두고 아내에게 유언을 하고 있었다.
"당신 음식 솜씨는 정말 최고였소. 또한 밤이면 그 일도 역시 최고였소. 내가 죽으면 할 사람이 없으니 그것이 몹시 걱정이구려."
이에 아내가 말했다.
"참, 당신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 걱정을 덜어 드리려고 둘이나 구해놨어요."
유언이라 할 말이 없지만 차라리 하지나 말 것이지. 가기 싫은 저승길, 무거운 발걸음을 어이 할거나.
가끔은 고금소총 한 토막이 엔돌핀과 다이돌핀을 솟구치게 하는 날도 있다. 소총(笑叢) 중에 가장 좋은 총이 고금소총(古今笑叢)인 줄을 이제는 알겠다.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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