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장 그르니에의 부활의섬 리뷰, 외딴섬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장 그르니에의 <부활의 섬>, 《섬》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그런 느낌이 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활동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섬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 혼자 뿐인>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
위의 글은 <부활의 섬>에 달린 각주로서, 장 그리니에의 <섬> 전체를 관통하는 섬에 대한 정의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혼자뿐인>, < 혼자씩일 뿐인> 이야기들로서 섬의 정의를 형상화고 있다.
<부활의 섬>의 주인공은 백정이다. 정신 병자인 그는 횡설수설 섬의 한 모퉁이 의자에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간장병에 걸려 노랗게 얼굴이 변한 그와 밤에 강가를 거닐고 있다. 그리고 그를 회상하고 있다.
직업이 백정인 그는 그의 병을 알고서 항변한다. 그와 함께 거닐고 있는 나에게 그는 자신의 병이 심각한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왜 정신병에 걸렸는지를 스스로 진단한다. 카페에서 다른 패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항상 혼자 마신 아페리티프를 마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페리티프는 식사 전에 마시는 각종 알콜성 음료다. 한마디로 혼자 마시기를 즐기는 주정뱅이 백정으로 보면 된다. 병을 얻게 된 두 번째의 요인은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이 예민해진 것"이 바로 그거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정신 병자지만 그는 오히려 혼자 살아가는 나 앞에서 나를 훈계하듯 소설 속 나를 몰아세운다. "무정부주의라고 자처하는 당신도 식민지에 가서 십 년씩 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소리친다. "단 석 달 동안도 혼자서는 못살거라"라고 항변하는 정신병자인 백정. 철저히 고립된 삶에 대한 자가 진단은 확실하지만 소심한 그는 결국 죽고 만다.
10년 전 떳떳하지 못한 경매 사건에 연루되어 가슴앓이를 한 백정인 그는 10년이 지나 모두가 잊어버린 그 사건에 대해 혼자서 속을 썩이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설 속 나는 생각했다. "그때 나는 너무 젊어서 사람이 육체적으로 아주 나약해지면 마음도 따라서 약해져 가지고 별 것 아닌 아픈 기억만으로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아내와 그는 대화는 물론 서로 마음이 없다. 남편의 이야기를 친구 얘기처럼 이야기하는 아내를 멀리하고 그는 늘 집 정원 깊숙한 곳에 혼자 앉아 있었다. 늘 피곤한 표정의 그와 함께 산책을 해 보지만 "필경 풍경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 백정이 무엇이건 눈에 띄는 것만 있으면 그 앞에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는 인간들이 그에게 거절한 의지依支를 사물들에게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달을 지나 백정은 몸져눕게 된다. 반전은 죽음 직전에 주어진다. 누렇게 뜨고 있는 눈, 목과 두 손은 흐늘흐늘했다. 그제야 그는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반전이다. 침묵이 흐르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가 어떤 몽상에 잠기려는 순간 그는 나의 손위에 그의 손을 얹고는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숨이 막힌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죽음을 앞둔 그는 나에게 내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비겁하게도 죽음과 내세에 대한 몇 가지 희망적인 말로 대답을 했지만 그다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별의미 없는 둘 사이의 대화는 "죽는다는 저 공통적이고 일상적인 시련들"그런 것들뿐이었다.
죽기 전 희미한 의식이 남아 있을 때 백정과 나눈 대화로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있지만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부활의 섬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그리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다. 외딴섬에서 백정이 정신병자가 되어 임종 직전 온전한 정신을 찾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국 <혼자뿐인>,< 혼자씩일 뿐인> 우리네 삶, 작가는 말한다.
-이 책 속에 담긴 일련의 상징들은 삶의 에피소드, 무대장치, 오락...... 따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남은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 신앙, 연민, 사랑과 같은 것도 과연 실재하는 현실임에 틀림없다. 또 고대의 사원은, 교회는, 궁전은, 그리고 오늘날의 공장은 절망을 막아주는 든든한 피난처들이다. 인간이 후천적으로 획득한 것들이나 거기서 암시받게 되는 의미 같은 것은 여기서 말하려는 바가 아니다.-
결국 <부활의 섬>, 따분한 그리 극적 전환이나 팽팽한 긴장이 없는 짤막한 이야기가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것은 고독한 현대인들의 일상으로서 거친 파도 따라 이리저리 부대끼는 우리들 모습 하나하나가 <케르겔렌 군도>가 되고 <행운의 섬들>이 되고 <부활의 섬>이 된 것이리라. 하여 우리들의 삶이란 <상상의 인도>를 거쳐 <보르메의 섬들>이 되어 외딴섬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부활의 섬> , 백정이여, 그대 영혼 영적 부활의 길, 그 길 편히 가소서.(2023.9.24.)
'[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5화 《이민이냐 노예냐》] (106) | 2023.11.26 |
---|---|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4화《거미줄》] (111) | 2023.11.22 |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3화 《일본말을 배워라》] (121) | 2023.11.19 |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2화 《철도공사장 일꾼》] (108) | 2023.11.17 |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1화 《역부의 길》] (143) | 2023.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