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나를 만나면]

백두산백송 2024. 1. 9.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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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나를 만나면]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몹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속 생각이 모두 움츠러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환해져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출처: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더숲 출판)

시인, 소설가, 극작가,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레이첼 리먼 필드(1894~1942)의 <어떤 사람>이란 시다.

이 시를 읽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생각"을 할까. 아니면 "마음속 생각이 환해져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될까. 사실 칼로 두부 자르듯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긍정의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피 인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거울과 오래도록 앉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다. 거울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희한하다. 내가 웃고 있으니 친구도 웃고 있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는 아닐지라도 속마음을 털어놓고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지음(知音)은 맞다. 한 마디만 들어도 내 속마음을 읽는 백아요 종자기다. 그만큼 오랜 세월 묵은 친구다. 만날 때마다 늘 웃는 얼굴이다. 한 번도 성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약간 의견 충돌이 있을 때도 웃는 얼굴로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친구를 만나면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받는다.

간도 쓸개도 없어 보이는 친구지만 그는 정년을 지나 아직도 건설현장에서 감리로 근무하고 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어 대뜸 건설현장에 가 본 적이 있다. 역시 웃는 얼굴로 일을 즐기고 있었다. 거울 속 그의 웃는 얼굴이 내 이마를 짚으며 얼굴을 펴라고 말한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도 많냐는 핀잔과 함께. 이 친구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밝아져 반딧불이처럼 빛난다.

어쩌다 지하철 입구에서 딱 부딪혀 버렸다. 기피 인물이 된 지 오래된 친구다. 역시 묵은 친구였지만 이 친구를 만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속 생각이 움츠러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리며" 힘이 쭉 빠진다. 그저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었던 친구인데 어려울 때 빌려 준 돈을 나도 모르는 약속어음으로 갚았다는 순간부터 서로 친구가 아니었다. 돈이 친구를 버린 것이다. 돈 때문에 상처받고 돈 때문에 친구를 잃는다는 말이 딱 맞다. 젊은 시절 아낌없는 술값으로 다져진 친구지만 돈은 술친구마저 마셔버렸다.

살아가면서 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의 경우처럼 서로 기피 인물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나는 어느 쪽에 해당할까. 나도 모르게 기피인물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짝 두렵기도 하다.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얼굴로 떠 올랐으면 좋겠다. (20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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