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미꾸라지 같은 인생]

백두산백송 2024. 1. 1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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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 인생 미꾸라지 (출처: 다음 카페)

[명상수필: 미꾸라지 같은 인생]

추어탕집 양동이에 미꾸라지들이 우글거린다
진흙뻘 속을 파고들 때처럼 대가리 끝에 꼿꼿이 힘을 주고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우글우글,//

몸부림쳐도
파고들어 가도
뚫지 못하는 게 몸인가
양동이에는 미끄러운 곡선들만 뒤엉켜
왁자하게 남는다//

그 곡선들 위에
주인여자가 굵은소금을 한 줌 뿌린다
그러자 하얀 배를 뒤집으며,
소금과 거품을 뱉어내며,
수염으로 제 낯짝을 치며,//

잘도 빠져나가던 생애를 자책하는지
미꾸라지들은
곧바로 몸에서 곡선을 떼어낸다
그러고는 축 늘어져 직선으로 뻣뻣하게 일자(一字)로 눕는다//

안도현의 《곡선들》이란 시를 읽다가 소쿠리에 담긴 미꾸라지를 생각하며 미꾸라지 같은 인생을 더듬어 보았다. "미꾸라지 같은 인간"이란 말을 하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확 달아나버렸다. 한 줄 시가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미꾸라지 같은 인생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얄밉게도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란 것을 깨달았다.

잘 살든 못 살든 사람으로 태어나 소쿠리에 갇힌 인생 되어 이리저리 발버둥 치다 어느 날 "믜리도 괴리도 업시" (청산별곡의 일절,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란 뜻이다.) 확 뿌리는 한 줌 소금에 일자(一字)로 하얀 배를 드러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우리네 삶과 닮아도 많이 닮은 것 같다. 정말이지 미꾸라지들이 곡선을 이루며 빙빙 돌다가 직선으로 뻗어 죽는 줄 몰랐다. 가만히 보니 등이 굽지 않은 미꾸라지는 미꾸라지가 아니다. 미꾸라지는 진흙 뻘밭을 헤집고 들어가야만 산다. 살려고 발버둥 치니 등이 굽고 등이 굽으니 곡선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곡선으로 살다 가셨다. 허리 한 번 쭉 펴고 그렇게 하늘을 보며 웃으시던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싸늘한 바람이 온몸을 덮친다. 그때도 그랬다. 쌀방망이를 들고 굽은 허리로 가마니를 번쩍 들어 화물차에 싣던 아버지의 허리가 그렇게 굽어 있었는지를 몰랐다. 세월 흘러 뒤돌아 보니 그때 아버지의 굽은 허리가 달그림자 되어 양철지붕에 축 늘어졌던 모습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뚝 떨어졌던 어머니의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 십 구공탄 붉은 연탄불에 열기 같은 생선을 올려놓고, 누런 된장 한 숟가락 비벼 구수한 양미리로 저녁상을 차리시던 어머니의 등이 곡선인 줄은 그때는 몰랐다. 임종도 못 지켜 드린 소생이 칠성판 위에 고이 잠든 어머니의 허리를 보고 그때서야 어머니의 등이 곡선으로 휘어져 있었던 것을 알았다.

곡선 인생, '미꾸라지 같은 인생'이 한겨울을 비비고 있다. 시나브로 대한, 소한을 지나 입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겨울을 날고 있는 내 모습도, 그 옛날 아버지 어머니의 아등바등 살아갔던 삶의 모습도, 미꾸라지 같은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간간이 바라보았던 양동이 속 미꾸라지들이 작은 몸을 힘겹게 곡선으로 비비다가 한 줌 소금에 하얀 뱃살을 보이며 일직선 되어 축 늘어져 죽는 삶이란...... 아등바등 살다 한 그릇 보양탕으로 거듭나는 인생.

"찬란한 슬픔", 어쩌면 우리 모두는 '미꾸라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있는 힘을 다해 아등바등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어느 날 일직선 되어 황홀한 세상을 서글프게 안고 가는 칠성판 인생. 한 그릇 보양탕으로 거듭나는 미꾸라지 인생이 그렇게 위대한 줄을 이제는 알겠다. (20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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