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자작수필&감상: 진밭골이 될 줄은 몰랐다]

백두산백송 2024. 5. 1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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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범물동 짙밭골산림공원


[자작수필&감상: 진밭골이 될 줄은 몰랐다]

진밭골 깊숙한 곳에서 부추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막걸리에는 부추전이다.

진밭골은 대덕산과 용지봉 사이의 긴 골로서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 있다. 논농사나 밭농사를 하기에 부적합하여 수전(水田)이라 불렀고, 순우리말로 물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여 얼핏 들으면 쓸모없는 곳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진밭골만큼  포근한 계곡도 드물다. 진밭골, 이름과 달리 공기 맑고 아늑한 골짜기는 도심 가까운 힐링 장소로서는 일급 지라면 일급 지다. 가끔씩  친구들과 오르락내리락하며 거닐 수 있는  집 가까운 그리 높지 않은 진밭골을 나는 좋아한다.

이날도 우리는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누어 앉았다. 몇 차례 술잔이 돌아가고 살짝 이마에 맺힌 땀이 식어갈 때쯤 일상사를 두고  티격태격 입씨름을 했다. 입씨름도 씨름이다. 목소리 크고 주장이 강하면 이긴다. 이긴다는 것은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거나 아니면 잘 모르더라도  우선 상대를 제압해 놓고 보자는 것, 둘 중의 하나가 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25만원 지원금을 두고도 찬성과 반대를 오가며 목소리가 크지는가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의정(醫政) 갈등을 두고 양비론을 펼치는 가운데 우리는 신이 났다. 그래 니 잘 났다. 죽일 놈, 살릴  놈. 부어라 마셔라. 진밭골이 그냥 진밭골이더냐. 물전이 수전이고 수전이 물밭이니 진밭골 한 몸 되기란 그저 취해야 진밭이 되느니라. 안빈낙도 물아일체 자연동화가 따로 있더냐. 사람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면 그만이지. "형님 한 잔 주세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몽주를 향한 방원의 목은 타들어가고 결국 선죽교에서 최후를 맞은 정몽주. 단심가 일절과 더불어 지난밤 보았던 넷플릭스 영화 기생수가 뇌를 파고든다.

-지구의 평범한 어느 날,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떨어진다. 이 생명체에 각인된 명령은 “인간의 뇌에 파고 들어가 신체를 강탈하고, 이 종을 잡아먹어라,” 흡사 환형동물이나, 촉수 괴물 같은 형상을 한 이 생명체들은 충실하게 인간의 몸에 안착했다.-

넷플릭스 기생수를 보았지만 <다음 백과>에서 리뷰한 이 일절만큼 잘 서술할 자신이 없어 그냥 퍼왔다.  자연과 인간, 인간에 대한 저주, 자연보호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보는 각도에 따라 던져 주는 영화 기생수. 천정에서 툭 떨어진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를 째려보고 있다. 지난밤 내 몸에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듯 이놈의 촉수가 나를  응시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기생수가 따로 없다. 수많은 기생수가 귓구멍이나 팔목 혈관을 타고 내 몸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다. 여기에다 진밭골 깊숙한 막걸릿집 풀밭에서 기생수 한 마리가 내 몸을 파고들었다면, 아니 이미 파고 들어와 기생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에고~, 이런 와중에 수능만점자 의대생이 변심한 여자 친구를 죽이고 구속되었다. 그의 뇌에 기생수가 파고들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범죄수사단의 프로파일러의 진단이 사뭇 궁금하다.

누구의 노래였던가~"세상은 요지경."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이 없는 현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뿔뿔이 흩어진 빈 탁자에 송충이 한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다. 영화 기생수를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부어라 마셔라 역시 부추전에는 막걸리다. 진밭골 깊숙한 막걸릿집에서 내가 그날따라 진밭골이 될 줄은 몰랐다. 물밭도 수전(水田)도 아닌 뒷전인생인 것을......(202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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