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수필 레시피: 그때 바로 그때 ]
무의미한 일상을 의미 있는 일상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도 수필이 지닌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수필의 레시피는 따로 없다. 일상사 자체를 잘 버무리는 것이 수필의 레시피다. 욕실 세면대 배수관을 뚫는 일도 의미 있게 매만지면 수필로 거듭난다.
세면대가 막혔다. 부엌 개수대 또는 배수구 배관이 막히면 영 밥맛이 없다. 특히 단독주택은 더하다. 뭐든지 막힘이 없어야 밥맛도 있고 살 맛이 난다.
몇 달 전에 글씨용 붓을 씻다가 붓을 놓쳐버려 세면대로 빨려 들어간 것이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양칫물이 주위를 맴돌다 힘없이 흘러내리니 배수관 틈새가 막혀도 꽉 막힌 것이 틀림없다. 철사용 옷걸이를 일자로 풀어 들쑤시니 치간칫솔이며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다. 그래도 어설픈 철사줄에 대롱대롱 찌꺼기가 매달려 나오니 다행이다. 실수로 빠뜨린 붓을 미리 제거했더라면 곤욕을 치르지 않아도 될 것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긴 것이 낭패를 초래하고 말았다.
빠뜨린 붓도 붓이지만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바로 해야 할 일이나 해결해야 할 것들을 가볍게 지나쳐버려 낭패를 본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 더하다. 서로 간에 살짝 막힌 줄을 알면서도 바로 풀지 않고 넘긴 것들이 후일 마음속 매듭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막힌 것은 그때 바로 그때 뚫어야 한다.
그와 나는 절친이라면 절친이었다. 그가 어려웠을 때 나는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우정 사이로 왜 찌든 때가 없겠는가. 우정도 세면대 배수관과 똑같다. 세월이 흐르면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길 수밖에 없는 마음의 찌꺼기도 그때그때 풀어야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어디 그렇던가.
문제는 늘 묵은 찌꺼기 속 '카더라'에서 출발한다. 소문의 실체를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아직도 등을 돌리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말'이다. '카더라'의 '카더라'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뒤따라 벌어진 실수, 서로를 향한 한마디 실수를 그때 그 자리에서 풀었더라면 오해가 오해를 낳아 배수관처럼 막히지는 않았을 것을. 배수관도 마음도 일단 막히면 쉽게 뚫리지 않는다. 둘은 아직도 꽉 막혀 냉담 중이다.
오늘 세면대 배수관을 뚫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때가 바로 그때다. 그것도 그때그때다. 만사는 때를 놓치면 후회한다. 그때그때 바로 그때..... 묵은 때가 한 움큼이다. 때를 놓친 절친과의 막힘도 어느 날 사랑 가득한 한 바가지 물로 확 뚫렸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세면대 배수관 잘 뚫었다.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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