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따라 글 따라]: 일상 & 수필 레시피

[일상&수필 레시피: 동주 생각]

백두산백송 2024. 11. 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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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 <태초(太初)의 아침>과 <또 태초(太初)의 아침>을 읽다가 그만 동주 생각에 빠졌다.

그는 1945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29세의 나이, 혈기왕성한 사나이가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간 것이다. 내 나이 29세 때를 생각하면 취업과 동시에 사랑을 찾아 동분서주했던 것.

1917년 태생, 1945년 옥사. 그는 조국의 현실 앞에 항일시인으로 살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열다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어릴 때 이름이 해환(海煥)이었다. '해처럼 빛나라'란 그의 아명답게 '해성처럼 빛나게' 살다 갔다. 조국을 위해 29세 나이에 맹렬하게 휘갈겨간 그의 시들을 보면 역시 그는 항일투쟁시인이요, 시대의 젊은 지성이다.

우리에게는 한용운, 이육사와 함께 민족 3대 저항시인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과연 그는 젊은이로서의 꿈과 사랑이 없었을까. 그의 친구 정병욱의 회고록에도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에게서도 심지어 동생 윤일주에 의해서도 그의 사랑 이야기는 없다. 안타깝다. 그의 중학교 동기인 김형석 교수를 생각하더라도 정말이지 너무 젊은 나이에 갔다. 일설에 생체실험 대상자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는 그를 생각하면 일제에 대한 증오심이 마구 솟구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소망한 순정 어린 심성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독립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던 동주.

그의  첫 작품, <삶과 죽음>, <초 한 대>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로 삶에 대한 고뇌와 항일 저항시를 썼다.  <병아리>,  <빗자루> ,<무얼 먹구 사나> ,<거짓부리> 등의 작품도 있다.

1941년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발간하고자 했지만 이것 또한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유고 시집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 쉽게 쓰여진 시> 도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된 작품이다.

<태초의 아침>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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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아침>, 삶의 아이러니, '사랑과 꽃'으로의 순수의지는 늘 희생을 강요한다. 그래서 세상은 늘 모순이다. <태초의 아침>은 천지개벽을 의미하고  이런 거룩한 '태초의 아침'에 '뱀과 독'은 도사리고 있다.  '사랑과 꽃', '뱀과 독', 세상이란 아니 우리들의 삶이란 모순된 우주로서 어쩌면 삶 자체가 아이러니요 패러독스다. 동주는 이토록 삶의 고뇌를 노래했지만 사랑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어쩌면 이 시가 내면 깊숙이 내재된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고뇌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동주와 빈센트 반 고흐/저녁달 고양이 출판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또 태초(太初)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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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의 시 <또 태초(太初)의 아침>. 시인은 무엇을 노래한 것일까.  '하나님의 계시, 너는 일어나라. 너는 행하여라. 어차피 태생이 윈죄라면 속죄하고 원초적 본능의 부끄러움을 가리고서라도 일어나라. 삶은 어차피 고뇌의 현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시가 어렵다. 나만의 해석에 집착해 본다. 단순 서정의 차원을 넘어 인간적 삶의 고뇌를 노래한 시가 원형적 상징이 되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상징주의 시도 초현실주의 시도 아닌 것이 독해를 어렵게 한다.

나만의 독해가 곡해가 아니라면 동주가 말하듯 우리들 삶은 이브의 해산처럼 고통의 존재다. 이브의 해산이란 이브의 첫사랑이요, 이는 결국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 원초적 본능의 몸부림인가. 님을 향한 동주의 사랑은 이처럼 힘들고 고달프다. 29세의 나이, 연희전문을 졸업할 때까지 한가닥 동주의 첫사랑을 엿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태초의 아침>이 사랑하는 임을 향한 그의 순정이라면 <또 태초(太初)의 아침> 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면서도 사랑하고픈 연인에 대한 연정 이면 정말 좋겠다. 그가 태어난 북간도 용정 땅 그의 무덤에 상사화 한 가지 피어나면 좋겠다.

동주와 빈센트 반 고흐/저녁달 고양이 출판

<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해온다.  무슨 계시일까?

이브의 첫사랑, 나도 이마에 땀을 흘리며 한 줄 시를 읊어 본다.

<자작시: 못된 밤>

못된
밤에는
시를 쓴다

시에 박힌
상처가
꽃처럼 피어난다

흔들흔들
바람 같은 이 마음

모진
바람이

할퀴고 간다

분명 저기 저
바람벽에
그믐달 같은
하얀 사람은 피고 지는데

못된 밤
한 줄 시를 두고
새벽달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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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에 간 동주를 위해  부끄러운 자작시 하나 헌사하고 싶은 그런 날이다.(2024.11.25)

동주와 빈센트. 열 두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글 윤동주 그림 빈센트 반고흐. 저녁달 고양이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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