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일상&수필 레시피: 3호선 여정, 만평역]

백두산백송 2024. 12. 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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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시철도 지상철 3호선 만평역이다. 3호선은 전국 유일의 지상 모노레일이다. 만평이라고 해서 주변에 만 평 논밭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만평네거리가 있어서 만평역이 되었단다. 나는 만평네거리를 만평로터리로 기억하고 있다. 만평역은 하트모양이다. 하트는 보기만 해도 좋다. 단순한 상징을 너머 세계공통어가 되어 버렸다. '사랑합니다', '만평역'. 기적소리 없는 전동차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울림이 크다. '사랑합니다. 만평으로 오세요'.

'만평 사랑, 그녀도 나도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좋아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만평역에 내리는 순간 만평은 만평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만평로터리를 함께 돌았던 그녀, 하트 모양의 만평역이 눈치를 챈 듯 살포시 웃고 있다.

이렇듯 만평역을 보는 순간 나는 하트를 생각했지만 만평역사(驛舍)의 하트모양은 실은 안경을 상징한다. 인근 3 공단의 주력 산업이  안경산업이라 안경 모양으로 건설한 것이 만평역이다. 하트모양이 안경을 상징한다니.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을 어이 알겠는가. 3호선 건설 당시 역사(驛舍)를 설계한 이들의 마음이 만평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역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깊은 마음이 농축된 것으로 보면 된다. 실제 만평역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지난날 만평의 논밭이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들로 즐비하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3 공단 굴뚝에서 피어나는 흰구름이 만평 가득 지역경제를 살리는 돈공장이 되면 좋겠다.

아늑하고 조용한 만평역이 석양에 빛난다. 역사(驛舍)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살짝 들떠있다. 만평로터리를  돌며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시절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서시》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 생각에 《서시》가 줄줄 흘러나온다.

《서시》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수록되어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1941)

《서시》는 동주의 마음이요, 내적 정신세계다. 식민지란 질곡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결코 비굴한 삶을 살아가지 않겠다는 순수 의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도덕적 이상에 대한 자기 성찰. 그러면서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픈 박애정신. 외유내강의 내재된 시대정신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가를 가늠케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시로서 더 이상 언급이 필요치 않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사랑과 겸손이다. 한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그 극복의지를 순수 사랑과 겸손으로써, 그러면서도 질곡의 현실에 대한 강한 인식을 노래한 동주의 서시가 내 사랑 가득 만평역을 감싸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그것이 현실이든 추억이든 그리움이든. 석양빛에 반짝이는 만평역은 아직도 살아 있는 내 사랑이다. 기실 나에게는 만평네거리가 지난날 만평로터리로 다가오고 있다.(20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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