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수필&감상: 겨울 모기는 소리도 없다]

백두산백송 2024. 12. 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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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작/대구문화예술회관 사진 전시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겨울 유리창에도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있다.  겨울 유리창에 겨울나무 하나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춥다.

아닌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야 한다. 직선이 속이 후련한 인상을 주겠지만 직선은 곧은 만큼 쉽게 부러진다. 그래서 때론 직선 같은  곡선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굽 돌아, 돌아 가지만 끝까지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는 부드러움이 있다.

강하다고 해서 다 강한 것이 아니다. 또 약하게 보인다고 해서 다 약한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달이 있고 별이 있다. 심지어는 이름 모를 혜성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구름이 스쳐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곧 무너질 것 같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서 작/교원 사진 연구회/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

신라시대 10구체 향가에는 충담사의 안민가가 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향가에는 4구체, 8구체, 10구체 형식의 노래가 있다. 4구체에는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가 있고 8구체에는 '모죽지랑가'와 '처용가'가 있다. 현존 향가 25수가 전해지며 나머지는 10구체의 노래다.

향가 10구체는 형식상 가장 완성된 형태의 시형이다.  향가에 대한 최초의 해독은 일본 사람 소창진평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무애 양주동 박사의 25수  완독을  으뜸으로 삼았지만  후일 후학들에 의한  해독이 정평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학도 정치의 영역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신라시대의 표기형식인 향찰에 대한 주체적 시각,  이제는 어느 것이 정본으로 이해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양주동 선생이 향가 25수를 완독하고 자칭 국보 1호라 외치다 뇌졸중으로 타계한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안민가는 신라 경덕왕 때 충담(忠談)이 지은 향가다. 10구체로 되어 있다. ≪삼국유사≫ 권 2에 배경설화와 함께 원문이 전한다.

경덕왕이  <찬기파랑사뇌가 讚耆婆郎詞腦歌>를 노래한 충담에게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 이안민(理安民)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니, 충담은 ‘이안민가’를 짓지 않고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이에 왕이 이를 아름답게 여겨 왕사로 봉하였으나 충담은 사양하였다.

노래의 기본 내용은 '왕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비유하고, 각기 자기 본분을 다하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전단, 후단, 결사로 구성된 10구체 안민가의 일단을 보자.

임금은 아버지고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고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하실 때 백성이 (임금의) 사랑을 알 것입니다.

(중략)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합니다.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

경덕왕은 신라 제35대 왕이자 성덕왕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불교 중흥을 꾀하여 불국사, 영흥사, 월정교, 등 많은 절을 세웠으며 석굴암도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아버지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덕사 종을 만들게 했는데 아들인 혜공왕대에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덕대왕 신종인 에밀레 종이다. 이처럼 그는 불교중흥에 힘쓰는 등 신라문화의 절정기를 이룬 왕이다.

향가 중 유일하게 유교적 덕목을 노래한 것이 안민가다. 《공자가 죽어야 나리가 산다》는 책(김경일 지음)도 읽어 보았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마음 하나 기댈 곳 없다.  답이 없다. 하늘 높은 곳에 천주와 예수의 십자가가 있고, 도처에 불심 가득 부처가 있는가 하면 팔공산에는 갓바위도 있다. 있어도 없는 세상이다. 모두가 따로국밥이다.

혹세무민, 경덕왕의 안민가 일절이 그리운 세상이다. 답답하다. 겨울 유리창에도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있다. 혹독한 겨울이다. 겨울 모기는 소리도 없다.(202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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