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니 하늘이 용서를 하지 않는다. 진달래가 피고 매화가 하늘하늘 하늘로 올라갔지만 하늘은 쉽게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국내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나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갔다. 누가 다치고 누가 당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다치고 우리가 당한 것이다. 가까운 나라는 물론 먼 나라 곳곳에서도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고 폭설과 강풍을 동반한 토네이도가 사람과 땅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곧 무너질 것 같다. 공교롭게도 사순시기에 화마가 지나가고 지진이 일어나고 땅 꺼짐이 여기저기 생겼다. 이제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공기와 물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주님, 멀리 떠나 계시지 마소서. 저를 도우소서. 저는 인간도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사순 5주간 입당송이다.(시편 22(21),20.7 참조)
예수의 행적, 사람의 아들로서 사람의 죄를 짐 진 40일의 수난을 기리는 마지막 주간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사순 시기를 보내며 마지막 주 종려나무 한 가지를 성가지라 여기며 가슴에 품었다.
40일 동안 예수의 고행을 몸소 체험하며 너는 과연 무엇을 뉘우치고 겸손해하며 몸과 마음을 비웠는가. 부활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가. 젊은 신부의 강론은 담백하면서도 간절하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부끄럽다. 과연 오늘 나 여기, 지금 이 순간 이토록 절박한 절규가 나에게도 있단 말인가. 젊은 신부의 떨리는 목소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다. 기실 땅이 꺼지고 산이 불타고 사람이 죽어가는 이 형국에도 트럼프의 관세를 걱정하고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를 두고 저울질하기에 바쁜 나에게는 도대체 사순 시기란 존재하는 것일까.
결국 솔로몬도 가고 햄릿도 갔다. 배신과 복수, 갈등 속 인간 존재의 실존적 회의를 짐 진 그들의 선택은 옳았던가. 사순 시기 누구는 햄릿이 되고 누구는 솔로몬이 되고 누구는 랍비가 되어 예수의 수난을 힐난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라며 젊은 신부는 목청을 높이고 있다.
덴마크 왕자 햄릿에게 닥친 불행. 아버지가 독살당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형인 클로디어스와 재혼. 인생이 연극이듯 연극으로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복수는 성공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 사순 시기 마음을 비워야 하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기, 질투, 배반, 복수,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용서 못할 배신자의 검은 마음을 두고 복수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고해성사를 통해 묵주 5단을 보속으로 받았지만 칼끝은 아직도 그를 향하고 있다.
어제는 개수대 밑 하수구를 뚫어야 했고 오늘은 비실비실 흘러내리는 세면대 물줄기를 보며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이용해서 세면대 배수구를 뚫었다. 배수구든 하수구든 무엇이든 뚫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가볍다. 매듭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리라.
흘러온 세월 속에 막힌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족은 가족대로, 이웃은 이웃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얽히고설켜 꽉 막혀 매듭 져 있다. 사순 시기 나는 이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비우거나 푼 것이 없다. 어쩌면 내가 살기 위해 더 단단히 매듭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순시기 짐짓 예수의 고행을 어이 알겠는가 마는 무릎 꿇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막힌 것들을 시원하게 뚫었으면 좋겠다. 매듭 져 꽉 막혀 있는 마음이 부끄럽다. 하늘과 땅과 물과 불이 무서운 줄을 이제는 알아야 하는데.....(202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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