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107

[명상수필: 정호승의 시를 알고자 한다면]

[명상수필: 정호승의 시를 알고자 한다면] 정호승의 시를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정호승 시인을 좋아한다. 사람의 향기가 잔잔하게 녹아 흐른다. 글에 가식이 없다. 그저 말하듯 줄줄 엮어가는 글줄이 때론 클래식이 되고, 때론 트롯이 되어 가슴을 울린다. 그는 "불행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실패한테 무릎을 꿇고 울었다." 고 했다. 얼마나 인간적인 말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가.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어렵고도 힘든 것. 나 역시 무릎을 꿇고 속죄의 시간이 흘러가야 치유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진정성에 목이 울컥한다. 그는 아버지의 임종도 어머니의 임종도 끝내 보지 못했다. 나도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최명희가 말하는 '혼불'의 참사랑을 놓쳐 버린 회한은 세월이 갈..

[명상수필: 티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명상수필: 티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밥을 짓다 보면 안다. 신기하다. 매일 짓는 밥도 매번 다르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밥의 질과 맛이 달라진다. 짓는 밥도 기분 따라 달라지니 밥이 곧 내 마음 같다. 티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밥은 밥솥이 다 알아서 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밥솥이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밥을 짓는다. 일체유심조란 따로 없다. 내 마음 따라 그날의 밥이 달라지니 밥은 짓는 이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티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간식을 아무리 먹어도 밥은 꼭 먹어야 한다. 누구는 탄수화물에 중독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닐 성싶다. 밥을 먹고 나면 책을 보고 싶고 한 줄 시를 읽고 싶다. 사람은 뱃심으로 산다. 나는 밥을 꼭 먹어야 한다. 티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밥을 짓..

[명상수필: 수필 '아나키스트적 발상'을 생각하다]

[명상수필: 수필, '아나키스트적 발상'을 생각하다]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무주공산에 있음을 느낀다. 호흡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강렬한 엑소더스, 그녀가 남긴 강한 울림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알 수 없는 열창의 메아리를 남긴다. 그것은 삶에의 강렬한 욕구,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강한 리비도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생의 애착으로 아니 생의 환희로 벅차오른다. '어서 오너라 나의 침실'로 '상화'도 가고 '혜린도 갔지만 삶에 대한 애착과 환희는 생존 자체의 뿌리를 흔든다. 《김병종 화첩기행 3》, 을 읽다 보면 이런 우수에 젖어 나도 모르게 한 잔 붉은 포도주로 목젖을 적시게 된다. 이럴 때 내 글에는 내가 없고 나도 없는 "아나키적 상황"에서 내 글은 허공을 ..

[명상수필: 만사는 소통이다]

[명상수필: 만사는 소통이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이 입맛을 돋운다. 만져 볼 수도 맛 볼 수도 없는 음식들이지만 나는 허영만의 목소리에 푹 빠져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한 그릇 뚝딱 해 치운다. 구수한 말의 레시피가 맛깔난 비주얼을 압도해 버리는 순간이다. 뿐만이 아니다. 예명은 허영으로 가득 찬 허영만이지만 요리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늘 겸손이요 소통이다. 그렇다고 요리사를 마냥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요리조리 음식에 고명을 섞어 맛을 내 듯 주인과 소통하는 말의 레시피는 구수하면서도 감칠맛 난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다름 아닌 그가 풀어내는 말의 레시피요 요리사와의 완벽한 소통이다. 단골 선술집 술맛도 주모와의 소통이 한 몫 한다. 동네 막창집 아지매의 별명은 '..

[명상수필: 겨울비는 내리는데]

[명상수필: 겨울비는 내리는데] 겨울비가 지하철 입구 계단을 타고 흘러내린다. 올 겨울이 무척 추울 것만 같다. 무거운 얼굴들이 우산을 접었다 편다. 불빛은 화려한데 하늘은 먹구름이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구석진 아들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앨런 긴즈버그는(1926~1997)는 풍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하던 젊은 세대의 우상이었다. 반문화 운동의 선두에 섰던 미국의 음유시인 앨런 긴즈버그, 그는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협오를 느끼며 시를 썼다. 그가 말하는 너무 많은 것들이란 '너무 많은 병원', '너무 많은 빌딩들', '너무 많은 식당들', '너무 많은 공장들이다'. 그러면서 그러나 '너무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 부족한 잣나무', '너무 부족한 명상'을 노래했다. 20세기말, 시인이 느..

[명상수필: 바람과 나무처럼]

[명상수필: 바람과 나무처럼] 사랑의 계절이요, 결실의 계절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 힘든 세태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도 믿고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믿음이다. 이 계절, 온몸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바람과 나무를 보라.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나무를 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격렬하게 나무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무도 이를 알기에 온몸을 맡긴다. 우리는 바람과 나무의 내밀한 사랑을 배워야 한다. 낙엽은 그냥 낙엽이 아니다. 온몸을 맡긴 나무의 고통이요 떨어지는 눈물이다. 바람이 격하게 나무를 사랑한 흔적임을 나무는 알고 있다. 강풍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와 함께 바람이 낙엽을 쓸어가고 있다. 겨우 붙어 있는 잎들마저 용납이 안 된다. 죽..

[명상 시: 기가 찬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도(車道)에 자전거 길이 생기고부터 자동차가 자전거 꼬리를 물고 갈 때를 종종 본다. 강변 자전거 길을 달릴 때는 기분이 좋았다. 멋진 구상이 삼천리 방방곡곡을 자전거로 달리게 만들었다. 강물 이은 자전거 길은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하지만 자동차 도로 갓길, 자전거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발에 편자'다. 어울리지 않는 도로 환경이 종종 나쁜 결과를 낳고 있다. 사람 탄 자전거가 역주행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위험천만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 달린다. 자동차가 달리는 갓길, 자전거 길이 하루빨리 없어지면 좋겠다. 도로 위 자전거 길 때문에 사람도 차도 자전거도 제정신이 아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이 때문에 입씨름을 벌였다. 기가 찬다. ========..

[명상수필: 먹물 한 점이]

[명상수필: 먹물 한 점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지만 붓글씨만큼 나에게 어려운 것도 없다. 쓰면 쓸수록 틀이 잡혀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괴발개발이다. 그래도 어쩌랴. 타고난 난필을.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그냥 쓰자. 그리고 즐기자. 문방사우, 비록 글씨엔 손방이지만 나만의 난필(亂筆)을 가까이하는 네 벗은 이름하여 지(紙), 필(筆), 묵(墨), 연(硯)이니 종이는 '나만의 대지'요, '붓'은 '내 마음'이요, 먹은 '마르지 않는 열정'이며, 벼루는 '내 마음의 텃밭'이라. 돌이켜 보면 선친(先親)은 명필이셨다. 나는 그것이 늘 부러웠다. 지금도 서랍에는 고인의 말씀이 담긴 필체(筆體) 좋은 메모지가 들어 있다. 어쩌다 졸필에 속이 상할 땐 이를 꺼내보곤 한다. 정갈하고도 멋있는 글씨..

[명상 시: 운암지에서]

[명상 시: 운암지에서] 운암지를 가로질러 오리 네 마리가 신바람이 났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수놈 두 마리가 동시에 암놈 등에 올라탔다 오리도 사랑할 때 올라탄다는 것을 처음 보았다 목감기가 심하게 들어 온몸이 쑤셨지만 마냥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지상 3호선을 타고 운암역에 내려 운암지를 찾았다. 가을햇살 속에 연못이 예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잘 꾸며진 운암지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아름답다. 인공폭포수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원앙과 수달이 짝을 짓고 노니는 곳이 운암지다. 여러해살이풀로 고랭이가 있는가 하면 노랑꽃창포가 있고 제비붓꽃과 수련과 부채붓꽃이 있어 사계절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수시로 찾아가는 운암지에서 정말이지 난생처음, 그것도 벌건 대낮에 오리들이 쌍으로 사랑을 하..

[명상수필: 무심]

[명상수필: 무심] 여기저기 무심사(無心寺)가 한 두 곳이 아니다. 낙동강을 끼고도는 무심사가 있기도 하고, 산길 돌아 암자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는 무심사를 보기도 했다. 대부분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 있지만 때로는 복잡한 대로변에서 무심사를 마주치기도 한다. 무심사가 한 둘이 아닌 것을 보면 마음 하나 비우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겠다. 나 역시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면서도 비운 마음에는 늘 생각각지도 않은 마음들이 가득하고 더 많은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 말이 무심이지 말처럼 행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무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실 세속적인 일에 무관심하거나 욕망에서 벗어난 빈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법정의 무소유도 따지고 보면 난초하나를 두고도 갈등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