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19

[명상수필: 미꾸라지 같은 인생]

[명상수필: 미꾸라지 같은 인생] 추어탕집 양동이에 미꾸라지들이 우글거린다 진흙뻘 속을 파고들 때처럼 대가리 끝에 꼿꼿이 힘을 주고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우글우글,// 몸부림쳐도 파고들어 가도 뚫지 못하는 게 몸인가 양동이에는 미끄러운 곡선들만 뒤엉켜 왁자하게 남는다// 그 곡선들 위에 주인여자가 굵은소금을 한 줌 뿌린다 그러자 하얀 배를 뒤집으며, 소금과 거품을 뱉어내며, 수염으로 제 낯짝을 치며,// 잘도 빠져나가던 생애를 자책하는지 미꾸라지들은 곧바로 몸에서 곡선을 떼어낸다 그러고는 축 늘어져 직선으로 뻣뻣하게 일자(一字)로 눕는다// 안도현의 《곡선들》이란 시를 읽다가 소쿠리에 담긴 미꾸라지를 생각하며 미꾸라지 같은 인생을 더듬어 보았다. "미꾸라지 같은 인간"이란 말을 하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

[명상수필: 나를 만나면]

[명상수필: 나를 만나면]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몹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속 생각이 모두 움츠러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환해져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출처: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더숲 출판) 시인, 소설가, 극작가,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레이첼 리먼 필드(1894~1942)의 이란 시다. 이 시를 읽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생각"을 할까. 아니면 "마음속 생각이 환해져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될까. 사실 칼로 두부 자르듯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긍정의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피..

[산문&감상: 최인호의 장편소설 소설《길 없는 길》 제3화 내 마음의 왕국 ]

[산문&감상: 최인호의 장편소설 소설《길 없는 길》 제3화 내 마음의 왕국 ] [길 없는 길 ]:최인호 장편소설 1 ♤ 메멘 또 모리 는 다시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오며 《제1권》 을 마무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제1권》 에필로그가 다. 폐망의 왕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카타르시스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절정을 치닫는다. 세자마마로서의 고귀한 혈통, 그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스핑크스요, 무정란임을 자각한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비운의 죽음들, 할아버지 고종도, 할머니 기생 장 씨도, 아버지 의친왕도, 어머니 강초선도 비운의 운명으로 갔다. 그래서 감상문의 제목을 소설 속에 나오는 로 잡고 줄거리와 감상을 버무려 본다. "메멘 또 모리, 죽음을 잊지 말자. 죽음을 기억하자." 나의 ..

[산문&감상: 최인호의 장편소설 소설《길 없는 길》 제2화 대발심 (大發心)]

[산문&감상: 최인호의 장편소설 소설《길 없는 길》 제2화 대발심 (大發心)] ♤ 제2화 대발심(大發心) 대발심(大發心), 경허(鏡虛)가 몸을 던졌다. 나라는 구한말, 역병이 돌고 있다. 천안을 거쳐 계룡산 동학사 만화 화상(和尙)을 찾아가는 길이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험난한 여정. 괴질로 사람들이 죽어간다. 죄인이 따로 없다. 병들고 죽으면 다 죄인이다. -죄인들이 서로 죽이며 뜨거운 고통을 받는 등활(等活 ) 지옥, 뜨겁고 검은 밧줄로 신체가 묶이고 수족이 끊기는 고통을 받는 흑성(黑繩) 지옥, 한꺼번에 많은 고통이 엄습하여 비명을 지르는 호규(號叫)지옥, 모든 것이 맹렬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극렬(極熱)지옥, 고통이 쉴 새 없이 닥치는 아비(阿鼻)지옥, 그 모든 지옥이 합쳐진 아..

[산문&감상 : 최인호의 장편소설 《길없는 길》리뷰, 제1화 거문고의 비밀]

[산문&감상 : 최인호의 장편소설 《길없는 길》리뷰, 제1화 거문고의 비밀] [길 없는 길 ] 제1권은 《제1화 거문고의 비밀》,《제2화 대발심 大發心》,《제3화 내 마음의 왕국》으로 되어 있다. 《제1권: 제1화 거문고의 비밀》 , 1인칭 시점으로 화자인 주인공은 영문학과 교수, 아직은 그냥 강교수로 나온다. 그의 이름 강빈. 출생의 비밀을 쫓아가게 하는 작가의 의도적 장치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 강초선,《제1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의친왕 이강(李堈) 공(公)으로 나온다. 이렇고 보면 제1화 《거문고의 비밀》은 1권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제1화》의 극적요소라면 거문고를 찾아가는 내적자아의 심안에 있다. 부정(父情)에 대한 목마름, 거문고에 묻어 있는 아버지의 체취. 아버지로부터 ..

[산문&감상: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리뷰: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

[산문&감상: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리뷰: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를 다시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 '가시고기'는 보지 않았다. 감상문의 제목을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으로 붙여 보았다. 나는 감상문이나 독후감을 늘 수필로 쓴다. 언젠가는 , 또는 란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살짝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것은 독자인 나의 몫이다. 감상과 독서의 효능, 외연과 내연의 확장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소설《가시고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극화(劇化)'하거나 수필로 '육화(肉化)'하는 것은 똑같다고 본다.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그때 하늘을 보거나 땅을 보면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늘이요 땅이 된다. 나도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축 늘어져 ..

[명상수필:당신의 하늘, 당신의 땅]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당신 가까이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의 하늘 당신의 땅입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서로 사랑하게 하되 겸손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의 하늘 당신의 땅 겸손은 곧 사랑입니다 ================================== [명상수필:당신의 하늘, 당신의 땅] 당신이 있기에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내 곁을 떠나 이방인처럼 나를 쳐다보기라도 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오로지 당신이 내 곁에 ‘있음’으로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당신만이 나의 유..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11화 《혼탁한 물결》]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11화:혼탁한 물결] 의 핵심에는 백종두와 장덕풍이 있다. 백종두는 일진회 회장이요, 장덕풍은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물은 깨끗할 때 물이지 은 똥물이다. 똥물은 일단 더럽고 악취가 풍긴다. 의 중심에 선 두 인물, 이들은 똥작대기를 휘두르며 도덕적, 정치적으로 타락한 난세의 전형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입신과 부의 축적뿐이다. 기회를 잡아라. 던질 때 던지고 잡을 때 잡아야 돈이 된다. 이 배고픈 민중의 입과 눈을 파고든다. 입은 주식인 쌀이요 눈은 등잔불이 아닌 남포등이다. 호박엿보다는 알사탕이, 등잔불보다는 남포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장덕풍은 장사치다. 잇속을 위한 머리 회전이 빠르다. 백종두로 하여금 빨리 쌀을 던지고..

[명상 시: 백수도 쉬고 싶다]

제주도는 언제 가도 또 가고 싶다. 봄에 해발 1,169m 어승생악 정상에서 백록담을 바라보고 왔다. 한라산 백록담 등반은 예약해야 하는 줄 몰랐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티스토리란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한 해를 마무리한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2024년 갑진년이 다가오고 있다. 사랑하는 님들의 건강을 빌어 본다. [명상 시:백수도 쉬고 싶다] 백수도 공휴일이나 토, 일은 철저히 지킨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든 것 내려놓고 쉰다 세 평 남짓 현관 앞 고추, 상추, 풀꽃들과 입술을 마주치는 벌과 나비도 심지어 무시로 드나드는 참새들도 공휴일이나 토, 일은 쉰다 백수도 할 일은 평일에 하고 하릴없이 토, 일, 공휴일은 모든 것 내려놓고 푹 쉰다 심지어 무시로 드나드는 참새들도 공휴일이나 토, 일..

[산문&감상: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산문&감상: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우리"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한 인문학 "오직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 표지글에 매료되어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었다. 또한 제목이 좋아 선택했지만 어렵게 다가왔다. 생각의 깊이가 짧고 스키마가 부족한 탓인 줄 안다. 그래도 읽는 동안 "내가 그리는 무늬는 무엇일까"란 화두 하나 건진 것으로 만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