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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허준도 육각형인간이 아닐는지 제4화>]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허준도 김난도가 말하는 '육각형인간'이 아닐는지. 비교하기가 언어도단이요, 견강부회 같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독서가 주는 쾌락이라면 쾌락이다. 역시 '내독(讀) 내석(釋)'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2024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서의 '육각형인간(A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 완벽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등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육각형인간'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강박적인 완벽함의 반향으로 작용한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목표라면, 포기를 즐기는 놀이이자 타인을 줄 세우기 위한 잣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육각형인간 트렌드는 계..

[명상수필: 모정의 세월]

글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글을 쓴다. 글로써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경우는 보았어도 글이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만약 나에게 글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내 모습은 어떠했을까. 설날, 후다닥 열차에 몸을 던졌다. 설날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란 것은 착각이었다. 동대구역 대합실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모두의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민족의 명절인 설날은 흥겨워야 하는데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기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이 2024년 갑진년 설날 아침 내가 본 여행객들의 모습이다. 무거운 얼굴들을 보는 내 마음도 가라앉는다. 명절이면 꼭 가슴을 아리게 하는 두 분, 모정의 세월, 2014년 그해 어머니는 살아 계셨고, 나는 아버님의 유택 앞에서 두둥실 흘러가는 서..

[명상수필: 정월 대보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현상과 본질, 그 경계선에서 많이도 고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글들은 본질을 벗어난 현실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은 본질의 언저리를 맴돌며 그저 드러난 현상에 울고 웃는 찰나적 감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수필은 근원적인 문제를 바탕으로 철저히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지향할 때 독자는 공감을 한다. 언젠가는 나도 항구성과 보편성을 지닌 명작 하나를 남기고 싶다.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수필,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스스로의 사유가 보편적 진리를 바탕으로 공감을 획득할 수는 없을까. 수필집 속에 있는 부끄러운 글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개작을 하거나 퇴고하며 스스로의 글을 다시 다지고 싶다. 때론 묵은 글들이 주는 진부함과 잡설이 부끄럽게..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山사람 7년, 제2화>]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 -N포세대들, 그래도 허준을 닮으면 좋겠다.- 약재의 출납과 간수를 맡게 된 허준. 이미 앞뒤 일을 꿰뚫어 보는 허준은 묵묵히 약초 캐는 일에 전념한다. AI에게 이런 허준에 대해 그 인간성을 묻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로 재직, KBS1TV 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렌드 연구자. 그리고 이제 겨우 약초에 눈을 떠가는 허준. 내가 보기에는 둘의 공통점이란 '시대를 초월한 선지적 식견'이요, 차이점은 '통시적 괴리' 하나뿐이다. 주변 인물들에게 숱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아내 다희에게 한마디 내색도 하지 않는 허준. 서로를 다독거리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두 사람 부부의 대화를 생각하면, 아니 김난도가..

[명상수필: 나는 미친 듯 소리쳤다]

[명상수필: 나는 미친 듯 소리쳤다] 축제는 늘 사람을 흥분하게 한다. 소주 한 잔을 노래로 삼켰다. 수성못 가장자리에 설치된 분수도 재즈축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춤을 춘다. 노래라면 대중가요인 트롯을 좋아하지만 클래식이나 재즈에 대해 아는 노래란 손가락 두세 개 정도랄까. 거기다가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예 없다. 하지만 가사 하나 몰라도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이 노래가 지닌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노래로 마셔버린 한 잔 소주가 흥을 타고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함께 찾은 수성못. 흥으로 동석한 사람은 인품 좋기로 소문난 수필 같은 문우다. 수필은 좋은 사람만이 쓴다.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니 수성못이 더욱 아름답다. 두 사람이 저 멀리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 어느 강변, 흥겨..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山사람 7년 제1화>]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 -허준도 나도 기죽지 말자- 《트렌드코리아 2024, 청룡을 타고 비상하는 2024를 기원하며!》 (김난도외 10명 공저, 미래의 창 출판/2024.1.10. 초판 29쇄 발행)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아니 벅차다. 용어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면서도 이해가 될 듯 말 듯 난해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한다. 마음이 착잡하다는 것은 1990년 초판 발행의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 푹 빠져 있는데 난데없이 딸애가 툭 던지고 간 신판 도서, 《트렌드코리아 2024》가 내 머리를 들쑤신다는 말이다. 책도 사람도 세윌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기가 죽는가 보다. 누렇게 변색된 《동의보감》 표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DRAGON EYES(용의 눈)란 서문(序文..

[명상수필: 대니산 끝자락, 도동서원]

[명상수필: 대니산 끝자락, 도동서원] 도동서원 가는 길은 언제나 얌전한 꽃길이다. 길가 코스모스도 고개를 숙이고 달맞이꽃도 얼굴을 가린다. 길이 얌전하니 길손의 마음도 저절로 겸손해진다. 낙동강을 끼고 현풍 살짝 돌아가면 구지면 도동리 대니산 서북쪽 끝자락에 똬리를 튼 도동서원이 있다. 하늘 높은 가을, 사백 년 수령 넘은 노거수, 황금빛 은행나무가 길손을 반긴다. 윤리와 도덕, 성리학의 결정체인 우리의 서원에는 도동서원을 비롯 소수, 남계, 필암, 옥산, 병산, 돈암, 무성서원 등 9개 대표 서원이 있고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낙동강을 따라 서원을 향하다 보니 자연스레 박 목월의 《나그네》란 시가 목젖을 울린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산문&감상: 로랭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리뷰, 절대 고독 그러나 답은 없다]

[산문&감상: 로랭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리뷰, 절대 고독, 그러나 답은 없다] -절대 고독, 그러나 답은 없다-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온다.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새들은 죽는다.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져 죽는 새들. 새들은 왜 조분석(鳥糞石)을 떠나 이곳에 날아와 죽는 것일까. 나는 이 소설을 몇 번째 읽고 있다. 재미가 있어 읽는다기보다 새들이 페루 해변에 와서 죽는 의미와 주인공과의 내밀한 밀어를 듣고 싶어서다. 새들의 죽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 그들의 운명적 결합은 완전합일체다. 새들도 죽고 그도 죽는다. 새들과 주인공은 그들 영혼의 깊이만큼 죽음을 맞이한다. 강원도 소설가 김도연이 추천한 "새들은 페루..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名醫 柳義泰 제2화]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名醫 柳義泰 제2화] -나도 '샐리'를 꿈꿔본다- 산음 땅에서 허준을 이끌고 있는 인물, 우선은 이방, 그리고 구일서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도 중요하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 이유 없이 도와주고 싶은 사람. 도움을 받고도 부담이 없는 사람. 타고난 복 중에 사람복도 으뜸 복이라. 산음에서 처음 만난 이방과 구일서, 이 두 사람은 허준에게는 천사 같은 인물들이다. 조력자 이방(吏房)은 공방(工房)인 구일서를 주막집으로 데리고 온다. 공방은 조선시대 승정원과 지방관아에 딸린 육방의 하나. 육방은 잘 아는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을 아우러는 말이다. 구일서 앞에서, 전임 사또 조현감과 친분이 있는 용천 땅 현감인, 아버지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