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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작가, 주제 사라마구(정영목 옮김)가 쓴 장편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그는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라고 정영목 교수가 소개하고 있다. 긴 이야기지만 찝찝하게 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끈적끈적한 이야기들이라 맹물을 마시며 읽었다. 모든 사람들이 '눈먼 자들'이 되고 나만 눈을 뜨고 바라본다면 상황이 이와 다를까. 이 소설은 프리즘을 안팎으로 밀고 당기며 인간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묵시록 같은 느낌으로 장면 하나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침밥을 먹다가 또 읽을..

[명상수필: 회개와 용서]

[명상수필:회개와 용서] 성탄절이다. 메리크리스마스! 회개와 용서, 토속적 신앙에 푹 빠져 있던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어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하기까지는 나름의 시련이 왜 없었겠는가. 아픔만큼 성숙한다는 말은 진리다.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어디든 함께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은 무기력은 심한 아픔과 함께 찾아왔다. 싫었다. 몸도 마음도 처질 대로 처졌다. 발병의 원인은 간단했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 올바른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 했다. 틀린 말 하나 없다. 예가 아닌 것들을 보고, 말하고, 듣고, 행했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니 모두가 내 탓이요, 스스로 짐 진 업이었다. 우연히 카카오 스토리(마..

[명상수필: 대구 10미(味),야끼우동]

[명상수필: 대구 10미(味),야끼우동] 대구 10(味) 중에 하나인 야끼우동에 대해 써 보았다. 대구 10 미는 '납작 만두, 논메기매운탕, 누른 국수, 따로국밥, 동인동찜갈비, 막창구이, 무침회, 뭉티기, 복어불고기, 야끼우동(볶음 우동)'이라고 한다. 야끼우동 전문점에 앉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먹어 버렸다. 맛이 좋아 흥분한 탓인지 글도 흥분해 버린 것 같다. 글 속 군더더기를 고명으로 생각하고 삼켜 주면 좋겠다. 수성못을 바라보며 야끼우동을 주문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방 한편에서 불기둥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짬뽕 같은 야끼우동이 나왔다. 벌겋게 잘 익은 꽃게에다 조개와 주꾸미 그리고 오징어가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룬 것이 먹음직스럽다. 맛집 크리에이터는 아니지만 한 컷을 잡았다..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10화 《겨울 들녘》]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요시다와 정재규 그리고 이동만이 의 중심인물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정재규는 100원의 돈을 빌리려고 요시다에게 40마지기의 논을 담보로 했었다. 이 일로 낭패를 당한다. 교활한 요시다는 숙달된 고리대금업자다. 40마지기를 80마지기로 갚아야 하는 정재규. 꼴통 양반의 경제적 무능성이 그대로 노출된다. 치고 빠지고 물고 흔드는 데는 이골이 난 요시다. 그 곁에는 충견 이동만이 있다.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정재규의 신세는 겨울 참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보리고개를 앞둔 민초들은 참새 몰이를 즐긴다. 결국 재규도 참새도 잡아 먹힌다. 참새구이가 입맛을 당기 듯 만경 거부 정재규를 요시다는 꿀꺽 삼켜버릴 태세다. 얻어먹는 자의 얼굴에는 개기름이 줄줄 흐른..

[명상수필: 거듭나고 싶다]

[명상수필: 거듭나고 싶다] "글을 쓰면 부활한다." 글을 대하는 그의 문심(文心)이 주는 성스러운 이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심이란 말은 글을 쓰는 이의 마음이요 철학이다. 문심을 통한 문학적 부활을 꿈꾸는 그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부활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종교적 믿음을 떠나 늘 정신적, 육체적으로 거듭나기를 꿈꾸는 그 무엇에 대한 갈증인지도 모른다. 실제 그는 치열한 신앙생활을 통해 종교적 부활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부활을 부정하고 돌아서며 문학인의 삶을 선택했다. 신앙을 포기하고 돌아선 그에게 문심의 불을 지핀 사람은 고교 때의 은사라고 했다. 그의 이력으로 보나 사람 됨됨이로 보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그를 두고 "글을 쓰면 부활한다"는 말을 불쑥 던..

[산문&감상: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리뷰, 시는 슬플 때 쓰는 것]

[산문&감상: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리뷰, 시는 슬플 때 쓰는 것]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을 읽었다. '시 하나에 별 하나, 별 하나에 시'가 있다. 각자의 삶이 시고, 별이 각자의 인생이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그에게는 별이 있고 시가 있어 외로울 수가 없다. 그의 호는 첨성(瞻星)이다. 아버지의 남성성을 가리고서 벌거벗은 몸으로 아버지와 밀담을 하고 있는 화자의 전신이 사랑이요, 눈물이요, 가슴인데 어디 외로울 틈새가 있으리오. 뿐만이 아니라 아동문학가 정채봉을 형이라 부르며 형의 인생을 함께 한 시인 정호승. 그는 정채봉을 너무 좋아했다. 끝까지 임종을 보지 못했기에 입관실 문을 열고 들어가 수의를 입고 누워 있는 형을 바라본 시인. 정이 많아 가끔씩 눈물도 삼..

[명상 시: 내 심장도 아프다]

[명상 시: 내 심장도 아프다] 살갑게 떠난 거리만큼 그만큼 심장이 아프다 가까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박차고 간 거리만큼 그만큼 심장이 아프다 가까이 있을 때도 가끔은 심장이 아프다고 말은 했지만 제 갈 길 박차고 간 흔적만큼 그만큼 심장이 아프다 살갑게 떠난 거리만큼 그만큼 내 심장도 아프다 퓨전의 시대, 올곧은 시인마저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질곡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한다고나 할까. 하늘을 향해 뻗은 전봇대마저 강풍에 흔들리는 계절, 겨울 까마귀 한 마리가 담장에 앉아 한참을 울고 간 날, 수돗물이 철철 넘치면서 세 평 남짓 자갈 찬 마당을 흥건히 적셨다. 별것 아닌 일에 흥분을 하고 주저앉기가 일쑤. 나는 나를 째려보는 내 눈이 저주스러워 버럭 화를 내며 먹던 밥을 엎..

[명상수필: 꼭두서니]

[명상수필: 꼭두서니] 그날따라 창밖에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옆에 앉기까지 나는 배호의 노래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입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선친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라 어린 시절부터 귀에 익은 이 노래를 나는 좋아한다. '궂은비 오는 삼각지', 얼마나 낭만적인가. 무언가 그리운 서정으로 노래에 푹 빠져있는 나를 향해 그녀가 던진 질문은 "꼭두서니를 아시나요?"였다. 그해 우리는 집단 연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상담사로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안내하고 있었다. 연수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우수에 젖은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생각 없이 그녀의 입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은 살아갈수록 자기 나름의 빛깔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꼭두서니는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식물로..

[산문&감상: 장 그리니에의 섬 리뷰, 고양이 물루 <제3, 4화>]

장 그르니에의 《섬》에는 1) 2) 3) 4) 5) 6) 7) 8) 이 실려 있다. 나는 순차적으로 읽기를 거부하고 2) 편을 먼저 맛보기로 했다. 는 로 되어 있다. 오늘은 를 감상해 본다. ♤고양이 물루:제3,4화 와 는 역전적 구성으로 하나의 서사다. 고양이 물루의 정체성은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된 에서 를 다 읽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물루는 자연사가 아닌 안락사를 통해 집안 정원에 묻혔다. 절대적 사랑, 영원한 사랑으로서의 객체인 물루.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던 그는 끝내 눈에는 피가 맺히고 다리는 절뚝이며 몸뚱이에는 총알이 박힌 꼴로 돌아왔다. 그리곤 한쪽 눈마저 시력을 상실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물루의 아픔을 화자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루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물루는 집안 정..

[명상수필: 말분 연정(戀情)]

[명상수필: 말분 연정(戀情)] 말분 씨,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도심 속 서당(書堂) 모서리에 앉아 있는 말분 씨는 한 때 내 가슴 한 쪽을 스쳐간 말분이와 이름이 똑같다. 말분이는 얌전하고 예뻤다. 너무 이른 나이,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고만고만한 나이에 그냥 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렸던 말분이, 그 말분이가 지금 서당 한 구석에서 명심보감(銘心寶鑑)을 들고 같이 앉아 있다. 나에겐 이미 명심보감은 물 건너갔다. 추억의 말분이, 그 말분이와 많이도 닮은 말분 씨, 이름도 같은데 생김새도 비슷하다. 믿거나 말거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추억의 언저리를 살짝 스쳐간 동심 어린 연정의 그녀, 그녀가 지금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6남매 중 내리 딸 다섯의 끝자리를 차지한 말분, 어쩌면 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