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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봉황(鳳凰) 새"야 날아라]

[명상수필: "봉황(鳳凰) 새"야 날아라] 봉황이 머물고 간 산사(山寺), 안동 봉정사(鳳亭寺)를 거쳐 영주 소백산 자락 희방사(喜方寺)를 다녀온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어니 땐들 난세 아닌 난세가 없었으랴만 그때도 나는 전설 속 한 마리 봉황새를 꿈꾸고 있었다. 생각보다 굵은 빗줄기가 온몸을 적셨다. 천년을 이어 온 봉정사, 서늘한 목조 건물 사이로 바람마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극락전을 돌아 대웅전을 둘러싼 아름드리 노송(老松)이 힘겹게도 주불을 향해있다. 천년을 이어온 사찰 앞에 무정(無情)인 노송마저 인간으로 하여금 유정(有情)을 낳게 함은 역시 무량무변(無量無邊)의 불력(佛力) 때문이런가. 감내하지 못할 호국의 일념이랄까. 의상대사가 주체할 수 없는 불자(佛者)의 형역(形役)을 종이로 접어 하늘..

[산문&감상: 허창옥의 산문산책 2 "오후 네 시" 리뷰, 아포리즘 수필의 창작과 실제]

[산문&감상: 허창옥의 산문산책 2 "오후 네 시" 리뷰] -아포리즘 수필의 창작과 실제- 아포리즘 수필, 어렵게 이해할 필요 없다. 시를 쓰듯 압축해서 한 폭의 수채화처럼 짧게 주어진 상황이나 신념, 원리, 가치관 등을 그려나가면 된다. 대단한 이론을 배경으로 탄생한 수필형태 같지만 어디까지나 본격수필의 변형으로서 실험수필의 한 유형이다. 아포리즘, 어학사전에는 '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시적형태의 수필로 보면 된다. 지금 《오후 네 시》 허창옥의 산문산책 2(수필세계 출판 2023.10.)를 읽고 있다. 수록된 전편이 아포리즘 수필이다. 필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글쓰기 자유를 열망한다. 하여 까다로운 수..

[명상수필: 기도, 세렌디피티]

[명상수필: 기도, 세렌디피티] 기도는 사람을 순진하게 만들어버리는 영적 힘을 가지고 있다. 허접한 나이에 묵주기도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꿈같은 인생길, 그래도 기도는 늘 나를 이해하고 받아준다. 긴 의자에 기대어 1959년에 개봉된 미국의 드라마 영화,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파계’를 보며 잠이 들었다. 진정한 복종을 향한 갈등이 결국은 수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종군 간호사가 되어 떠나겠다는 장면을 희미하게 바라보면서 잠이 들었다. 진정한 복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을 위한 아니 절대자를 향한 사랑, 믿음, 기도...... 부지불식(不知不識), 온몸 전율을 타고 흐른 짜릿함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오른손을 꼭 잡고 온몸에 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 그녀의 손은 떨리..

[명상수필: 영국사(寧國寺) 고목, 인간 노거수를 생각하다]

[명상수필: 영국사(寧國寺) 고목, 인간 노거수를 생각하다] 어느 사찰이든 은행나무는 있다. 해충방지용이라고 들었다. 해충도 해충이지만 인간벌레도 걸러 주는 자정능력이 있단다. 천년을 견디어 온 노거수 앞에서 겸손해지는 이유가 따로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무정 설법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 영국사 고목, 노거수 앞에서 잠시 인간 노거수를 생각해 보았다. 봄바람과 함께 영국사를 향했다. 영국사는 삼국시대에 원각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충북 영동군 천태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이 이 절로 피신하여 국태민안 기도를 올렸다는 곳. 난이 평정되자 공민왕은 국청사(國淸寺)로 불렸던 사찰을 영국사(寧國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길게 드러누운 흙길이 자비의 보살인양 내 마..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구침지희(九針之戱)와 분초사회(分秒社會) 제5화>]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상) 리뷰, ] -구침지희(九針之戱)와 분초사회(分秒社會)-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 20여 전 의원취재를 했던 유의태의 과거시험의 일화가 눈길을 잡는다. 당시 명종의 어의요 내의원 실력자였던 양예수와의 한판 승부. 유의태는 단순 젊은 날의 객기로 치부하고 있지만 내심 자신의 인생 역정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과거시험에 대한 미련이요 한풀이였다. 소설 속 행간의 맥락을 보면 양예수보다 침술에서 한 수 우위임을 엿볼 수 있다. 유의태가 시험을 보긴 보았는데 자신의 위치를 두고 지레 겁을 먹은 양예수가 유의태의 시험답안을 고의로 분실케 하여 유의태를 낙방시켜 버린다. 예나 지금이나 시기와 질투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쓴맛을 보게 한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명상수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명상수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시구(詩句)를 화두(話頭)로 삼아 생각에 잠겼다. 이른 봄날이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구 중에 하나다. 출전은 자판을 치면 바로 나온다.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唐) 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관문을 열면 축대 옆에 모란이 있다. 족히 삼십 년은 살아온 모란이다. 꽃대도 나이를 먹으면 시커멓게 나이테를 두르는 것 같다. 춘래불사춘, 우수 지난 모란 꽃대가 살짝 떨고 있다. 봄바람이 현관 앞까지 치고 올라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모란 꽃대에 아직은 입술을 다물고 있는 꽃술. 그래도 붉은 희망이 새봄과 함께 현관문을 슬며시 노크하며 지나간다. 우수 지난 봄비가 왔다 갔다 사람..

[산문&감상: 박기옥의 수필집 '아하' 리뷰1] -수필집 리뷰 이어가기1-

[산문&감상: 박기옥의 수필집 '아하' 리뷰 1] -수필집 리뷰 이어가기 1- 나는 수필을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늘 함께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에세이든 독후감 또는 기행문이든 소위 일상사 잡문이든 구별하지는 않는다. 보기에 따라 일기 하나라도 내 눈에는 명작(名作)이요 명시(名詩)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지역에서 쏟아지는 수필집이나 산필집 또는 에세이나 시집 또는 소설들이 한 달에 아니 일 년에 거의 100여 권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정확한 수치는 통계를 내어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대충 문인협회에 등록된 부문별 분과가 시, 시조, 소설, 아동문학, 수필, 평론, 희곡 등 일곱 개 분과로 되어 있으니 각 분과별 한 해에 10권 정도 출판되면 대충 답은 주..

[명상수필: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명상수필: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지나고 보니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당신 마음 하나 믿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말없이 스쳐간 당신의 사랑, 그 깊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신을 잊고 살아온 만용과 자만은 이제 한 줌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픈 마음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껏 나를 안아 준 그 사랑에 대한 마지막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했습니다. 당신을’. 그리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하지만, 이제 당신의 그림자는 텅 빈 하늘 어디에도 없고 공허한 내 마음만이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천변을 거닐며 작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작은 하늘엔 바람도 없고 구름도..

[산문&감상: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산문&감상: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밥을 먹다가 지금 일본을 강타하고 있는 책을 아느냐고 물었다. 티스토리를 하고 있지만 이런 소식과 관련된 포스팅과 인연이 없었다. 당연히 몰랐다. 정보의 바다에 놀고 있으면서도 엉뚱하게 뒤통수를 맞고 보니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어 10분 내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이미 빌려 놓은 책을 잠시 와서 보고 가면 좋겠다고 친구는 말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확 치미는 호기심에 그대로 인터넷 구매를 해 버렸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시집 제목이다. 명시 명작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서글프다. 명시가 주는 명약이랄까. 한참을 웃고 나니 눈물이 핑 돈다. '시리즈 누계 90만 부 판매, 페이지..

[명상수필: 꽃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명상수필: 꽃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몇몇 문우들과 몇 해 전 고적답사를 다녀왔다. 봄비가 내리다 말고 화창한 봄날로 바뀌었다. 포항 흥해읍 칠포리에서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암각화와 성혈을 본 뒤 경주 안강읍에 있는 흥덕왕릉으로 향했다. '흥덕왕, 신라 제42대 왕이자 헌덕왕의 동생으로, 이름은 수종 또는 경휘,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 왕위에 올라 골품제를 강화 등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 개혁. 청해진과 당성진을 개척, 장보고로 하여금 청해진 대사를 맡게 하여 해적의 출몰을 방지하고 해상 왕국을 건설했다.'(출처:다음백과 나무위키) 가는 도중 '성혈'이 자꾸 떠올랐다. 해설사는 구멍 속에는 아직도 물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물로 이어지는 역사의 근원을 생각하며 흥덕왕과 비(妃)의 사랑을 극화시켜 보..